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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대통령이 동생들의 방황기에 대해 "그게 정상이고 내가 비정상 아닌지"라고 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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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봉기
- 프리미엄뉴스부 기자
- E-mail : knight@chosun.com
- 정치부에서 주로 여권(與圈) 취재를 담당했습니다...
- 정치부에서 주로 여권(與圈) 취재를 담당했습니다. 만 14년의 기자생활 가운데 최근 9년을 정치부에 있었습니다. 조선일보 입사는 지난 2000년 5월. 정치부와 사회부, 편집부를 거쳤습니다. 종합편성방송(종편) 출범을 위해 1년 간 TV조선에서 방송 기자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입력 : 2014.12.05 05:13
박근혜 대통령의 남동생인 박지만 EG 회장이 정치권 인사에게 “큰누나(박 대통령)가 무섭다”라고 말했다는 보도가 최근 나오면서 눈길을 끌고 있다. 박 대통령이 취임 이후 친인척 관리 차원에서 박 회장을 엄격하게 대하는 데 대해 박 회장이 서운한 감정을 갖고 있다는 말이 나돈다.
박 대통령은 대선 전만해도 박 회장과 관계가 비교적 돈독했다. 박 회장이 지난 1986년 대위 제대 후 1989년부터 2003년까지 6차례에 걸쳐 마약 관련 혐의로 적발됐을 때도 내심 박 회장을 이해해줬다고 한다.
여권(與圈) 내 친박들 사이에선 과거 박 대통령이 방황하던 동생들에 대해 했던 말이 전해진다. “부모 두 분을 다 총탄에 잃었는데 방황하는 내 동생들이 어떻게 보면 정상이고 (버티는) 내가 비정상적인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어머니인 육영수 여사가 8·15 광복절 기념식에서 문세광의 총에 저격됐을 뿐 아니라 몇 년 뒤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마저 최측근의 총에 맞아 서거했기 때문에 동생들이 정신적 혼란을 겪을 수 밖에 없다는 점을 이해했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의 여동생인 근령씨도 지난 1982년 기업인 2세와 결혼했다가 얼마 안 돼 이혼하는 등 어려운 시기를 겪었다.
박 대통령은 대선 전만해도 박 회장과 관계가 비교적 돈독했다. 박 회장이 지난 1986년 대위 제대 후 1989년부터 2003년까지 6차례에 걸쳐 마약 관련 혐의로 적발됐을 때도 내심 박 회장을 이해해줬다고 한다.
여권(與圈) 내 친박들 사이에선 과거 박 대통령이 방황하던 동생들에 대해 했던 말이 전해진다. “부모 두 분을 다 총탄에 잃었는데 방황하는 내 동생들이 어떻게 보면 정상이고 (버티는) 내가 비정상적인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어머니인 육영수 여사가 8·15 광복절 기념식에서 문세광의 총에 저격됐을 뿐 아니라 몇 년 뒤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마저 최측근의 총에 맞아 서거했기 때문에 동생들이 정신적 혼란을 겪을 수 밖에 없다는 점을 이해했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의 여동생인 근령씨도 지난 1982년 기업인 2세와 결혼했다가 얼마 안 돼 이혼하는 등 어려운 시기를 겪었다.
-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004년 8월15일 여동생 박근령씨, 남동생 박지만씨와 함께 서울 국립현충원에서 치러진 고 육영수 여사 30주기 추도식에 참석했을 때 모습. /조선일보DB
박지만 회장의 경우, 고(故)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의 도움으로 결국 사업가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박태준 회장이 EG의 전신인 삼양산업 부사장직을 맡겼고, 이후 이 회사의 대표이사가 됐다.
하지만 박 대통령 역시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이후 큰 충격을 받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5공화국에서 벌어진 ‘박정희 격하 운동’ 때문이었다. 그는 지난 2007년 자서전에서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 사실도 아닌 (아버지에 대한) 가십성 기사가 허다했다”, “아버지 묘소를 찾아가 ‘하루빨리 왜곡이 바로잡히는 날이 오게 해달라. 적어도 그런 인식을 바로잡는 데 노력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기도했다”고 적었다. 아버지와 가까웠던 사람이 등을 돌리는 데 대해서도 “인생의 서글픔이 밀려왔다. 높은 자리에 있었던 사람일수록 더 그런 것 같았다”고 했었다. 또 심리적 스트레스 때문에 온몸에 원인을 알 수 없는 반점이 번져 고생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은 당시 거의 매일 일기(日記)를 쓰면서 마음을 다잡는 동시에, 종교의 문을 두드렸다고 한다. 신학대학원을 잠시 다니기도 했고, 법구경·금강경 등 불교경전도 봤다고 자서전에서 회고했다.
수필도 꾸준히 썼는데, 그는 1998년 펴낸 ‘결국 한 줌, 결국 한 점’에서 “행복한 사람은 글을 쓸 수 없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내 경우에 비추어 보더라도 아마 그럴 것”이라며 “사람들은 자기의 멍든 가슴을 달래려고 또는 채워지지 않는 가슴을 메워 보려고 글을 쓰는지 모른다”고 했다. 지난 1992년 5월21일 일기에선 “그런 생을 다시 살라고 한다면 차라리 죽음을 택할지도 모른다”고 적기도 했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