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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12.02 04:35
박근혜 대통령이 1일 청와대 회의에서 '정윤회 국정 개입 의혹 문서' 유출 사건에 대한 '대통령의 생각'을 처음 밝혔다. 박 대통령은 먼저 "문건을 외부에 유출하게 된 것이 어떤 의도인지 모르지만 결코 있을 수 없는 국기 문란 행위"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문건을 보도한 언론을 향해 "조금만 확인해 보면 금방 사실 여부를 알 수 있는 것을 관련자들에게 확인조차 하지 않은 채 비선이니 숨은 실세가 있는 것같이 보도하면서 의혹이 있는 것같이 몰아가고 있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검찰은 철저하게 수사해서 명명백백하게 실체적 진실을 밝혀달라"며 "누구든지 부적절한 처신이 확인될 경우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일벌백계로 조치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문건 내용과 관련해서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얘기들이 국민을 혼란스럽게 하지 않았으면 한다"는 말로 선을 그었다. 대통령은 "(취임 후 2년 가까이) 발 뻗고 쉰 적이 없었다"며 "이런 일은 국정 운영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비서실장님 이하 여러 수석과 정부의 힘을 빼는 것"이라고도 했다. 권력 내분(內紛)으로 비치는 이번 사태에 대해 억울하게 느끼고 있다는 뜻이다.
박 대통령 말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만큼 신속한 사실 규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대통령의 발언은 우선순위가 바뀌었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다.
지금 국민이 가장 알고 싶어하는 것은 문건에 나온 대로 정윤회씨의 국정 농단 의혹이 과연 어디까지 사실인가 하는 것이다. 시중엔 오래전부터 정씨와 관련된 여러 의혹이 사실인 것처럼 돌아다녔다. 이와 함께 문건 작성 및 유출 과정에 권력 핵심 내에서 암투(暗鬪)가 있었는지 여부도 밝혀져야 한다.
대통령은 이날 이번 일로 충격을 받은 국민에게 사과 한마디 없이 주로 문서 유출과 언론 보도만을 문제 삼았다. 누군가 정쟁(政爭)에 써먹기 위해 청와대 공식 문서를 불법 유출했다면 대통령 말대로
'국기 문란(紊亂)' 행위다. 하지만 대통령이 이것만 문제 삼고 비선 문제에 대해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미리 선을 그어버리면 나중에 나올 검찰 수사 결과를 스스로 훼손해버리는 셈이 된다.
이번 문건은 청와대에서 작성돼 공식 경로를 통해 보고되고 '공공기록물'로 등록까지 된 문서다. 문서를 작성한 곳도 청와대이고 유출이 일어난 곳도 청와대다. 그런데도 이를 입수해 보도한 언론사를 고소한 데 이어 대통령이 직접 나서 언론을 비판하는 것은 본말(本末)이 뒤바뀐 것이다.
대통령은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이 불투명한 국정 운영 방식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몇몇 측근에 의존하는 지금 같은 체제에서는 사실이 아닌 것이 사실로 둔갑하거나 쉽게 부풀려질 수밖에 없다. 대통령 측근들과 관련된 여러 의혹이 제기된 진원지도 야당이 아니라 여권 내부였다. 되풀이되어온 이상한 인사(人事)는 이런 의혹을 기정사실화하는 역할을 했다. 지금 국민이 듣고 싶은 말은 집권 2년도 되기 전에 터져 나온 이번 사태를 국정 운영의 근본부터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겠다는 대통령의 다짐일 것이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