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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보박전국세청고위직찌라시보고]/[청와대]정윤회개입설나온배경이문제

'정윤회 개입설' 나온 배경이 문제다

  • '정윤회 개입설' 나온 배경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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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12.03 05:32

박근혜 귀 잡은 '막후 實勢론' 야당 대표 이후 10년째 불거져
집권 후엔

 

동생 박지만 회장이 '피보다 진한 물 있다'며 지목

공식 라인 무시한 의사 결정이 끊임없이 의혹 낳는 근본 원인

김창균 부국장 겸 사회부장
김창균 부국장 겸 사회부장
새누리당 전신(前身)인 한나라당 출입 기자들은 잊을 만할 때마다 똑같은 취재 지시를 받곤 했다. "박근혜의 귀를 잡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내라"는 거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2004년 총선을 앞두고 첫 대표를 맡은 이후 줄곧 한나라당의 대주주였다. 한나라당의 진로를 점치려면 박 대표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아야 했다. 보통 경우라면 정당 출입 기자에게 그리 어려운 취재 과제가 아니었다. 당대표 주변의 핵심 당직자들 얘기를 두루 들으면 큰 그림을 파악할 수 있었다.

박근혜 체제는 달랐다. 박 대표가 최종 결심을 밝힐 때까지 당의 공식 참모들은 대부분 '깜깜이' 상태였다. 그러다 보니 박 대표가 주요 의사 결정을 상의하는 라인이 따로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제기됐다. 박근혜의 '복심(腹心)'을 찾으라는 취재 지시는 그래서 나온 것이었다. "박 대표가 식사 모임 중 걸려온 전화번호를 보고 황급히 밖으로 나갔다더라"면서 그 사람이 누군지 알아보라는 주문도 있었다. 하지만 취재 결과는 늘 만족스럽지 못했다. 박근혜의 측근으로 알려진 사람들조차 '카더라' 루머를 전할 뿐이었다.

그렇게 수집된 '증권가 정보지' 수준의 실세(實勢) 명단에 단골로 등장하는 사람이 정윤회씨였다. 정씨는 박 대통령이 1998년 재·보선을 통해 국회에 처음 입성할 무렵부터 2004년 당대표가 되기 직전까지 비서실장으로서 박 대통령을 보좌했다. 정씨를 왜 실세로 꼽는지 그 구체적인 근거를 들었던 기억은 없다. 정씨가 박 대통령과 주요 현안을 조율하는 모습을 직접 봤다는 사람도 물론 없었다. 박 대통령의 지시를 받고 실행에 옮기는 데 관여하는 사람은 실무 보좌진 몇 명뿐인데, 이 보좌진을 수년간 지휘했던 사람이 정씨였기 때문에 그런 추측이 나온 게 아닐까 짐작할 뿐이었다.

지난 대선을 거치면서 잦아드는가 싶던 '숨은 실세 찾기' 게임에 다시 시동이 걸린 것은 박 대통령의 '인사(人事)'가 거듭 파장을 일으키면서였다. 친박(親朴) 핵심으로 꼽히는 사람들조차 낯설어하는 '무명(無名)의 인재'들이 주요 자리를 꿰차면서 '도대체 누가 추천한 것이냐'는 궁금증이 도진 것이다. 박 대통령의 인사 내용을 사전에 아는 사람은 이번에도 실무 보좌진밖에 없었다. 그 배후에 정윤회씨가 있을 것이라는 미확인 첩보가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정윤회 국정 개입설'에 결정적으로 무게를 실어준 사람은 박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 EG 회장이었다. 역대 정권이었다면 '막후 실세'의 당사자로 등장했을 법한 박 회장이 이번 정권에선 실세를 고발하는 상대 역을 맡았다. 지난 3월 시사저널에는 '정윤회씨가 사람을 시켜 박지만 회장을 미행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정씨는 시사저널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는 한편 박 회장을 찾아가 "미행을 지시한 적이 없다"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회장은 사정 당국 관계자를 만나 정윤회씨의 국정 개입 사실을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면서 "피보다 진한 물도 있더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이 혈육인 자신보다 정씨를 더 신뢰하고 힘을 실어준다는 취지였다.


이렇게 곪을 대로 곪아 있던 문제가 이번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으로 불거진 것이다. 검찰 수사 결과 정씨가 국정에 개입했다는 문건 내용은 사실무근이라고 밝혀질 수도 있다. 그럴 가능성이 높다는 게 개인적 예감이다. 박 대통령이 문건 내용에 대해 '악의적인 중상(中傷)'이라고 미리 선을 그어 놓았고, 아직은 대통령 권력의 서슬이 퍼런 정권 2년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검찰이 대통령의 예단과 맥을 같이하는 결론을 내놓는다고 해서 정권이 "그것 보라"며 가슴을 쓸어내릴 일은 아니다.

누군가 정씨가 나랏일을 쥐락펴락한다고 생각하고 그걸 막겠다고 문건을 유출한 것이다. 그 사람은 왜 그렇게 확신했을까. 박지만 회장은 어떤 경험을 했길래 누나가 자기보다 정씨를 더 밀어준다고 판단했을까. 모든 언론은 왜 지난 10년 동안 막후에서 박 대통령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따로 있다고 보고 그 그림자의 실체를 잡으려고 쫓아다녔을까.

이런 의문을 불러일으킨 원인은 한 가지다. 박 대통령이 공식 라인을 제쳐 두고 주요 대사를 결정해 왔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이 이런 근본적인 원인을 해소하지 않는 한 '막후 실세론'은 앞으로 남은 임기 3년 동안 불쑥불쑥 고개를 쳐들 것이다. 박 대통령의 정치적 힘이 건재한 현 시점에선 대통령이 원하는 방식으로 '실세론'을 잠재울 수 있을지 모르지만 집권 후반기로 접어들면 정권을 뿌리째 뒤흔드는 태풍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