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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한글이 망가지고 있다

ㅂㅅ·ㅇㅂㅊ·ㅇㅁㅂ·ㅇㅈㄹ… 이게 다 욕입니다

ㅂㅅ·ㅇㅂㅊ·ㅇㅁㅂ·ㅇㅈㄹ… 이게 다 욕입니다

  • 유석재 기자

    입력 : 2013.10.10 03:02 | 수정 : 2013.10.10 05:17

    [한글이 아프다] [4·끝] 문자 탈락 현상, 심각하다

    왔어는 왓어, 안된다는 안댄다… 복자음·복모음 회피 넘어서 ㅅㄱ, ㅈㅅ 등 모음 아예 없애
    단어 상당수가 욕설·비속어… 소통 가로막는 현상으로 번져

    'ㅅㅂㄴ' 'ㅇㅁㅂ' 'ㅇㅂㅊ' 'ㅇㅈㄹ'.

    그저 의미 없는 자음(子音)의 나열이 아니다. 자녀에게 '이 뜻이 뭔가' 물어보시라. 아마도 "아, 이거요?"라면서 줄줄 해독하는 아이들이 있을 것이다. 청소년들의 통신 언어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이 '단어'들은 왼쪽부터 '×발놈(년)' '이뭐병(이건 뭐 병신도 아니고)' '여병추(여기 병신 하나 추가요)''이지랄' 이다. 모음(母音)의 탈락이 말 자체가 욕설이라는 사실을 은폐하고 있는 것이다.

    초성(初聲)·중성(中聲)·종성(終聲), 즉 자음과 모음으로 글자를 이루는 훈민정음의 제자(制字) 원리는 한글 반포 567년을 맞는 2013년에 상당 부분 무너지고 있는 상황이다. 처음엔 간편한 의미 전달을 위해 이뤄졌던 '문자 탈락 현상'이 점차 소통을 가로막는 현상으로 번지고 있는 셈이다.

    1단계: 복자음 탈락 현상

    교사 이지연(36)씨는 메시지나 카카오톡을 보낼 때 보통 "스레기(쓰레기) 좀 버려 줘" "집에 다 왓어(왔어)"라고 쓴다. 천지인 방식 휴대전화 자판에서는 쌍시옷을 쓰려면 ㅅ→ㅎ→ㅆ 순으로 자판을 누르는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했잖아'를 '했쟈나', '싫어'를 '시러'라고 쓰기도 한다. 자음을 두 번 두드리는 것 역시 귀찮아졌기 때문이다. 이씨는 "정식으로 쓰는 글도 아니고, 빠른 시간 안에 서로 뜻만 통하면 되는 통신 언어라 별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컴퓨터 채팅이나 게시글에서도 시프트(shift) 키를 누르기 싫어 복자음을 피하는 사람들이 많다.

    ◇2단계: 복모음 탈락 현상

    "야, 이거 갠춘한데(괜찮은데)" "머가(뭐가) 안댄다는(안된다는) 거야" 같은 표현은 이제 많은 기성세대에게도 그다지 낯설지 않게 됐다. 컴퓨터 앞에서 자판을 두드리는 사람들은 대체로 왼손 손가락으로 한 번, 오른손 손가락으로 한 번씩 번갈아서 타자를 하는 것이 익숙하다. 그런데 복모음이 있는 글자의 경우에는 왼손 한 번+오른손 두 번의 '엇박자'가 나게 돼 성가신 경우가 많고, 아예 모음 중 하나를 탈락시켜 단모음으로 바꾸려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오나전(완전)' '고나련(관련)' '우너빈(원빈)'처럼 이 같은 이유로 생겨난 오타가 아예 신조어처럼 굳어진 경우도 있다.

    
	주요 모음 탈락 통신언어.
    /일러스트=박상훈 기자
       3단계: 급기야… 모음 탈락 현상

    이런 현상은 마침내 '문자 파괴'를 의미하는 모음 탈락으로 진화됐다. 초기 단계는 'ㅋㅋ'나 'ㅎㅎ'처럼 누구나 뜻을 짐작하기 쉬운 가벼운 의성어였다. 그러나 최근 국립국어원의 '청소년 언어 실태 언어의식 전국 조사'는 이 현상이 그저 웃어넘길 단계를 넘어섰음을 깨닫게 한다.

    청소년이 종이 위에 쓴 글 중 30위까지의 고빈도 은어(隱語) 중에서 무려 17개가 인터넷과 SNS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음 탈락 단어였고, 욕설과 비속어도 상당수 섞여 있었던 것이다. 1)ㅃ2(빠이·헤어질 때 인사) 3)ㅅㄱ(수고하세요) 4)ㅅㅂ(×발) 5)ㅂㅇ(바이) 6)ㅆㅂ(×발) 7)ㅂㅅ(병신) 8)ㅈㅅ(죄송) 10)ㄴㄴ(No No) 11)ㄷㄷ(덜덜) 15)ㅉㅉ(쯧쯧) 17)ㄲㅈ(꺼져) 20)ㄱㅅ(감사 또는 가슴) 22)ㅈㅈ(GG·Good Game 또는 Give up Game·졌다는 뜻) 23)ㄱㄱ(Go Go·빨리 시작해) 25)ㅊㅋ(추카·축하) 26)ㅂㅂ(바이바이) 28)ㅂㄹㅂㄹ(빨리빨리) 순이었다. 이쯤 되면 '모음 탈락 사전'이라도 만들어야 할 판이다.

    이 같은 '신형(新型) 문자'는 최근엔 TV방송 자막에까지 '진출'했다. 지난 6월 지상파 3사의 일요일 저녁 예능 프로그램을 조사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소속 방송언어특별위원회는 "'부럽' '수줍' '해맑' '아쉽' 등 단어의 일부만 쓰거나 'ㅉㅉ' 'ㅋㅋ' 'ㅎㅎ' 'ㅠㅠ' 등 자음이나 모음만으로 감정을 나타내는 통신언어를 자막으로 사용했다"고 밝혔다.

    과거 중국 로바족(族)에게 한글 보급을 시도했던 전광진 성균관대 교수(문자학)는 "자음만으로 표기하는 방식은 제대로만 한다면 오히려 훌륭한 약어(略語)의 아이디어가 될 수 있으나, 지금처럼 원칙 없고 무분별하게 비속어를 섞어 사용한다면 의미 소통을 방해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조선일보·국립국어원 공동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