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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능 올림픽 영웅들

매일 15시간 훈련… 0.01㎜ 오차까지 깎아냈다


매일 15시간 훈련… 0.01㎜ 오차까지 깎아냈다

[참조] 피땀흘린 노고의 결실.
  • 박순찬 기자

  • 입력 : 2013.08.12 21:56

    [기능올림픽 영웅들] [3] CNC밀링 기계 금메달 노성재

    - "퍼펙트" 찬사받은 19살
    항공기·자동차 등에 쓰이는 정교한 금속 부품 만들어내
    아버지 권유로 시작… 2代가 같은 기계 다뤄

    '가로 15㎝, 세로 10㎝, 두께 5㎝의 강철판을 도면(圖面)대로 깎아내라.'

    한참 동안 도면을 들여다보던 노성재(19·삼성테크윈)씨가 머릿속으로 완성품의 3D(3차원) 입체 모형을 그려본 뒤 조심스럽게 작은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주어진 시간은 4시간. 그가 입력한 프로그램대로 몸집보다 더 큰 CNC밀링 기계가 손바닥만 한 금속 철판을 정교하게 깎아나가기 시작했다. 그는 "얼마나 집중했는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대회 관계자의 목소리도 듣지 못했다"고 했다.

    "퍼펙트(Perfect)." 노씨가 제출한 작업물을 본 심사위원들은 0.01㎜의 오차도 없는 그의 작품에 최고점을 줬다. 600점 만점에 538점. 전 세계 21개국 대표 선수를 제치고 노씨는 최고 점수를 기록하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국제기능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노성재씨가 경남 창원시 삼성테크윈 지식정보연수소에서 CNC밀링 기기로 깎아낸 제품의 깊이를 측정하고 있다
    국제기능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노성재씨가 경남 창원시 삼성테크윈 지식정보연수소에서 CNC밀링 기기로 깎아낸 제품의 깊이를 측정하고 있다. /창원=남강호 기자
    지난달 독일에서 열린 국제기능올림픽대회 'CNC밀링' 금메달리스트 노성재씨는 까까머리에 앳된 얼굴이었다. 올해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그는 단상 위에서 대형 태극기를 휘날리던 순간을 떠올리며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며 수줍게 웃었다.

    매일 15시간 이상씩 9개월간 맹훈련

    CNC(Computerized Numerical Control)밀링은 컴퓨터로 수치를 제어해 평면·곡면의 금속제품을 가공하는 기기다. 수작업이 아닌 만큼 정교한 부품을 만들어낸다. 항공기 부품, 자동차 부품 제작을 비롯해 방위산업 분야까지 안 쓰이는 곳이 없을 만큼 필수 기기다. 우리나라는 2년마다 개최되는 국제기능올림픽에서 3회 연속 금메달을 획득한 CNC밀링 분야의 강국(强國). 삼성테크윈 황해도(52) 기계가공 분야 명장(名匠)은 "일단 한국 국가 대표로 선발되면 국제 대회 입상권에는 든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노씨는 사실 국가 대표 후보군 중 꼴찌였다. 국제기능올림픽에 출전하는 단 1명의 국가 대표는 최근 2년간 전국대회(2011~2012년) 금·은메달 수상자 4명 중에서 선발한다. 2011년 수상자는 국가 대표 선발전까지 1년간 추가로 훈련할 수 있어 유리하다. 노씨는 2012년 은메달 수상자였지만 대부분 선배였던 나머지 3명을 제치고 당당히 국가 대표로 선발됐다.

    국가 대표 선발 이후 노씨는 새벽 6시부터 밤 10시, 길게는 자정까지 강도 높은 하루 일과를 소화하며 기능올림픽을 준비했다. 매일 새벽 5시 55분에 일어나 체조를 하고 운동장을 30분씩 달렸다. 아침을 먹고 오전 8시 정각이 되면 도면을 받아들고 컴퓨터 프로그램을 짜고, 금속을 가공하는 훈련을 9개월간 반복했다. 노씨는 "훈련이 정말 힘들었지만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겠다는 목표 하나만 가지고 버텨냈다"고 했다. 노씨를 지도한 황해도 명장은 "워낙 집중력이 좋은 데다 막히는 부분이 있어도 주춤거리지 않고 과감하게 밀고 나가는 성격이 장점"이라고 했다.

    회사 선배들 노력도 기여

    노씨의 금메달엔 회사 선배들의 숨은 노력도 있었다. 황해도 명장은 대회를 준비한 9개월간 노씨와 함께 토·일요일이 없는 생활을 했다. '솔선수범하지 않으면 누구도 따라오지 않는다'는 지론 때문이다. 2011년 기능올림픽 CNC밀링 금메달리스트인 고교 선배 이민구(22·삼성테크윈)씨의 노력도 큰 몫을 했다. 이씨는 수개월간 현업에서 비켜나 있으면 경력이 단절되지만 훈련센터로 자원해서 내려와 후배에게 금메달을 받은 노하우를 전수했다.

    노씨가 CNC밀링 분야에 관심을 가진 것은 중소기업에서 CNC밀링을 운용하는 아버지의 권유 때문이다. "취업도 잘되고, 기계산업에 없어서는 안 될 유망한 분야"라는 조언을 듣고 인천기계공고에 진학해 CNC밀링을 배웠다. 노씨는 이번 대회 수상으로 6720만원의 포상금과 동탑산업훈장, 병역 대체 복무의 혜택을 받게 됐다. CNC밀링 분야와 관련된 일을 할 경우 매월 100만원씩의 기능장려금도 지급된다. 삼성테크윈에서도 1000만원의 포상금과 1호봉 특진의 혜택을 줬다.

    노씨는 지난달부터 비행기 항공 엔진 케이스를 만드는 현장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세계 최고의 항공기 부품을 만드는 CNC밀링 분야 명장이 되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