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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한국사(좌파의 논란)

[데스크에서] 國史, 국사학과 독점 안 된다


[데스크에서] 國史, 국사학과 독점 안 된다

  • 김기철 문화부 차장

  • 입력 : 2013.07.31 03:03

    
	김기철 문화부 차장 사진
    김기철 문화부 차장












    1980년대 서울대에선 '한국사'를 '국민윤리'와 함께 교양 필수과목으로 들어야 했다. 저명한 한국사 전공 교수의 강좌를 1학기 동안 들었는데, 그분 전공인 고대사를 한참 강의하다 고려시대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학기가 끝나버렸다. 다른 강사의 수업을 들은 친구들은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를 다시 배우는 것처럼 지루했다며 툴툴거렸다.

    서울대가 1990년 이후 선택과목으로 돌린 '한국사'를 교양 필수로 바꾸는 방안을 추진한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반가움과 함께 걱정도 든다. 입시에서 선택 과목으로 전락해 고교에서 '왕따' 취급을 받는 한국사 교육을 대학에서라도 정상화하겠다는 취지엔 공감하지만 지나친 민족주의와 편향적 역사 해석 때문에 비판을 받는 국사학계가 한국사 교육을 독점하게 되면, 오히려 문제를 키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현실적으로는 암기식 고교 교육의 재탕이 될 가능성이 높다. 서울대 커뮤니티 홈페이지엔 "'한국사'를 필수과목으로 하는 건 좋지만 역사 전체가 암기하는 수업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거나 "'대학 국어'처럼 일괄적 교육과정과 교재를 만들고 이를 가르치는 형태가 될 공산이 큰데, 역사를 해석하는 관점은 다양하지 않은가요" 하는 글이 올라와 있다.

    한국사와 국민윤리가 교양 필수과목이었던 1980년대, 두 과목은 '관제(官製) 학문' 취급을 받았다. 현대사에 대한 관심이 높았던 80년대 학번은 그들이 알맹이라고 생각한 현대사를 빠뜨린 대학의 한국사 강의를 외면했고, 그 틈을 '해방 전후사의 인식' 같은 이념 서적이 파고들었다. 국사학계의 한국 근현대사 연구는 이런 편향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 때문에 서울대의 한국사 필수가 효과를 보려면, 한국사 강좌의 문호를 국사학뿐 아니라 인접 학문으로 활짝 열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일제강점기를 '수탈과 저항'의 이분법 도식으로 보고, 해방 이후를 '분단 한국사'로만 접근하던 국사학계의 타성(惰性)을 비판하고 나선 게 국문학과 경제학, 정치학, 사회학, 법학 등 다른 분야 연구자들이다. 이들은 '도시' '근대' '민주주의' '경제성장' '사회 발전'이라는 키워드로 한국 근현대를 들여다보는 다양한 '안경'을 내놓았다.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한국사의 이해'라는 과목을 진행한 정치학자 이완범 교수는 "제1차 경제개발은 경제학자가, 이승만과 박정희 시대의 비교는 정치학자가 강의를 맡았는데 상당히 효과적이었다"고 했다.

    서울대가 필수과목으로 추진하는 '한국사'는, '근현대 한국의 이해' 정도의 이름으로 국문학과 경제학, 정치학, 사회학, 법학 등 인접 분야의 강좌 개설을 허용하고 학생들에게 선택권을 갖게 하는 게 어떨까. 세계 속에서 우리 현대사의 성취와 한계를 객관적으로 보는 기회를 제공한다면 학생들도 좀 더 다양하고 유연한 역사관을 갖게 될 것이다. 커리큘럼 개발이 진일보하면 한 강좌 안에서 여러 분야 교수가 함께 가르치는 통합 강좌를 내놓을 수도 있다. 한국사 교육은 국사학계가 독점권을 행사하는 '성역(聖域)'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