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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남 수단(아프리카) 이태석 신부님

韓國軍에 환호하는 南수단 "아프리카의 韓國 되겠다"


韓國軍에 환호하는 南수단 "아프리카의 韓國 되겠다"

  • 전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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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3.07.22 03:01

    [南수단 '한빛부대' 전현석 기자 르포]

    '停戰 60년' 한국, 유엔 파병 벌써 20년… 약소국에 경제발전 노하우를 전하다

    故이태석 신부가 활동한 나라… 한빛부대 282명 폭염과 싸우며 길 504㎞ 닦고 의료·교육봉사
    "폐허됐던 한국의 발전 잘 안다" 현지주민들 한국엔 마음 열어… 독립기념 행사서 "코리아만세"

    
	전현석 기자
    전현석 기자











    남수단 독립 2주년인 지난 9일 둘러본 남수단 종글레이주(州)의 주도(州都)인 보르시(市)는 60년 전 우리나라 모습이었다. 영양실조로 배만 볼록해진 아이들은 물로 배를 채우려고 우물가로 모였다. 어디를 가나 총을 든 군인을 만났다. 소 떼를 모는 목동도 AK-47 소총을 들고 다녔다. 야밤에 총소리가 들렸지만, 주민들은 놀라지 않았다. 250만명 이상 사망한 2차례 내전(1955~1972년·1983~2005년)에 이어 부족 간 분쟁, 반군 테러가 계속되는 남수단에서 총소리는 일상이 된 지 오래다.

    이날 보르시 자유광장에선 독립기념일 행사가 열렸다. 보르시 전체 주민의 30분의 1인 1만여명이 모여 남수단 국가인 '사우스 수단(남수단) 오이예'를 부르고, "인디펜던스(독립) 오이예"를 외쳤다. '오이예(oyee)'는 '만세'를 뜻한다.


    행사 도중 갑자기 주민 수천명이 광장 앞쪽으로 몰렸다. 태권도복을 입은 한국군 장병 35명이 연단 앞에서 태권도 시범을 보이고 나무판 수십 장을 격파하자 주민들이 소리를 지르고 어린이들은 태권 동작을 따라 했다. "코리아 오이예!" 남수단 국민 사이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이들은 지난 3~4월 유엔 남수단 임무단(UNMISS) 소속으로 종글레이주 재건(再建) 지원을 위해 파병된 한빛부대 대원 282명 중 일부다. 공병부대가 중심이 된 한빛부대는 1993년 소말리아에 파견된 상록수부대 이후 7번째로 한국이 유엔 평화유지활동을 위해 파병한 부대다. 한빛부대의 가장 큰 임무는 보르와 다른 지역을 잇는 도로·보급로 총 504㎞를 정비하고 공항과 활주로를 짓고 보수하는 일이다.

    
	한빛부대 의료대원들이 14일 부족 간 무력충돌로 중상을 입고 유엔 헬기로 보르 공항에 긴급 후송된 환자를 응급처치하고 있다. 한빛부대 파병지 지도. 한빛부대 파병 현황. 남수단 개황.
    한빛부대 의료대원들이 14일 부족 간 무력충돌로 중상을 입고 유엔 헬기로 보르 공항에 긴급 후송된 환자를 응급처치하고 있다. /한빛부대 제공
    한빛부대는 이날 주(州)에서 활동하는 유엔 파병국 중 유일하게 남수단 독립기념 행사에 초대받았다. 고(故) 이태석 신부가 헌신했던 남수단 톤즈 지역에서 184㎞ 떨어진 보르 지역 주민은 한빛부대원들을 이 신부처럼 따랐다. 유엔 차량 중에서도 한빛부대 차만 골라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니알 마작(Majak) 보르시장은 "60년 전 전쟁으로 폐허가 됐던 한국이 세계 10대 경제 대국으로 발전한 사실을 잘 알고 있다"며 "한국군의 도움으로 남수단이 아프리카의 한국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한빛부대 진료받으러 10㎞ 걸어와"

    11일 오전 9시 한빛부대 주둔지에서 4.3㎞ 떨어진 보르 보육원(고아원). UN 표시가 찍힌 하얀색 한빛부대 차량 행렬이 보이자 공터에 모여 있던 고아 170여명이 박수 치며 환영 노래를 불렀다. 한빛부대원들에게 "안녕하세요" 우리말로 인사하기도 했다.

    보르 보육원 아이들은 모두 한마을 출신이다. 2011년 부족 간 분쟁으로 마을 주민 1000여명이 한꺼번에 몰살당했다. 이웃 마을 주민들이 부모 시체 곁을 맴돌던 아이들을 거둬 보육원을 만들었다. 한빛부대는 지난달부터 보르 보육원을 지원하고 있다. 비만 오면 물이 차올라 수업을 할 수 없었던 보육원 교실 바닥에 시멘트를 깔았다. 쓰레기 처리장 같았던 공터를 운동장으로 만들었다. 보육원 진입로 200여m 길도 새로 단장했다. 한빛부대는 매주 수요일 부대 근처 아피르 마을에 간이 진료소를 차리고 의료봉사활동을 한다. 10여㎞ 떨어진 곳에 사는 사람들도 소문을 듣고 진찰을 받으려고 걸어온다. 유엔 남수단 임무단 소속으로 종글레이주 치안 유지를 지원하는 네팔군의 야잘만 싱(Singh) 중위는 "남수단은 수십년 동안 지속된 내전으로 외부인에 대한 경계심이 강한데, 한국군이 대민 지원을 활발히 하다 보니 한국군에 마음을 여는 것 같다"고 했다.

    
	한빛부대가 10일 중장비를 동원해 보르 공항에서 보르 시내 구간에 이르는 도로 보수공사를 하고 있다(왼쪽). 한빛부대 태권도팀이 11일 보르시의 한 초등학교에서 태권도를 가르치기 전에 학생들과 인사하고 있다.
    한빛부대가 10일 중장비를 동원해 보르 공항에서 보르 시내 구간에 이르는 도로 보수공사를 하고 있다(왼쪽). 한빛부대 태권도팀이 11일 보르시의 한 초등학교에서 태권도를 가르치기 전에 학생들과 인사하고 있다. /한빛부대 제공
    "한국군이 건설한 길 통해 평화 찾아올 것"

    비행기를 두 번 갈아타고 1만1200여㎞를 날아온 한빛부대를 맞이한 건 폭염과 진흙이었다. 한빛부대 본부가 주둔한 보르 지역은 3~4월에 기온이 50도까지 올랐다. 땡볕에 전투화 밑창이 녹아내리고 온도계가 터져 고장 나 버렸다. 계속된 폭염에 부대원 몸무게가 평균 4~5㎏씩 빠졌다. 한빛부대 주둔지인 보르 지역 땅은 물이 제대로 빠지지 않아 비만 오면 펄처럼 질퍽거렸다. 한빛부대가 깨끗이 닦아 놓은 도로가 비만 오면 하루 만에 진창이 됐다.

    해충도 문제였다. 말라리아모기가 곳곳에 득실댔다. 흰개미 떼가 나무로 지은 임시 천막에 몰려들어 기둥을 갉아댔다. 한빛부대 장병은 이런 어려움을 자부심 하나로 버텨내고 있었다. 쿠올 만양 주크(Juuk) 종글레이주지사는 "한국 공병이 지은 길을 통해 사람들의 왕래가 잦아지면 부족 간 오해가 사라지고 평화가 찾아올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