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07.12 13:47
하버드대 엘버스 교수가 말하는 연예·스포츠 산업 성공 비결
확실한 1명이 시들시들한 1000명보다 나아
영화 20개에
1억달러씩 투자하던 디즈니
'아이언 맨' 등 3~4개에 올인, 매출 2배 급증
애플 음원 390만개 중 1개가 전체 판매량
24%
'평범한 상품이 효자' 라는 '롱테일 법칙' 연예·스포츠 산업에서는 안 통해
"창조경제는 이미 있는 걸 1등으로 만드는 것
한국 비디오게임·음악서 글로벌 리더 돼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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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타 엘버스 교수가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정에서 싸이의 말춤을 추고 있다. / 보스턴=이신영 기자
이들의 공통점이 무엇일까? 그것은 똑같은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강의에 강연자로 나섰다는 것이다.
애니타 엘버스(Elberse·40) 교수가 가르치는 '창조산업의 전략 마케팅(Strategic marketing 0in creative industries)' 수업이 그것이다. 2011년 이 강의를 들은 하버드대 MBA 졸업생 최세영씨는 "120명 정원인 수업에 신청이 평균 500~600여명 몰린다"고 전했다. 테니스 스타 마리아 샤라포바, 힙합 가수 제이지, NBA 스타 르브론 제임스 등 연예·스포츠계의 성공 비밀을 케이스 스터디로 분석하면서 실제 연예·스포츠계 인사를 초청해 강연한다. 2011년엔 하버드대 MBA 최고 우수강의상을 탔다.
엘버스 교수는 2008년 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 '롱테일에 투자해야 하는가?(Should we invest in longtail?)란 글로 학계에 반향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롱테일 이론'(용어설명 참고)의 창시자인 크리스 앤더슨 와이어드지 전 편집장과 논쟁을 벌이며 견고했던 롱테일의 인기를 뒤흔들었다.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롱테일은 꼬리가 길지만 납작해요. 수익이 안 나는 거죠. 2006년 미국 3200만개 음원 재생 횟수 가운데 상위 10% 음원이 전체 재생 횟수의 78%를 차지했습니다. DVD 렌털 시장에서도 상위 10% DVD가 전체 대여된 DVD의 48%를 차지했습니다. 애플의 음원 390만개 가운데 음원 하나가 전체 판매량의 24%를 차지했고, 나머지 360만개는 각각 100개도 못 팔았고요. 롱테일 시장은 없어요. 승자의 시장만 존재할 뿐이죠."
그는 강의하듯 말을 이어갔다. "앤더슨은 인터넷이 확산하면서 소비자들이 히트 상품에서 멀어지고 틈새 상품을 찾는다고 주장하죠. 하지만 유튜브를 보세요.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17억 뷰를 기록하고 '젠틀맨'은 4억 뷰를 넘었죠. 또 제로(0) 뷰를 기록한 수천 개가 넘는 비디오는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요?"
엘버스 교수의 연구실은 미식축구공, 축구 유니폼, 일렉트릭 기타 등 다른 교수 연구실에서는 구경하기 어려운 물건으로 가득 차 있었다. 별명이 '록스타'(Rockstar)인 그는 2011년 하버드대에서 평생 고용(tenure)을 보장받았을 때, 뉴욕·라스베이거스·LA의 나이트클럽에서 10일간 지인들을 초대해 파티를 여는 파격적인 행보로 학내에 화제를 뿌렸다. 그는 기자와 마주 앉자마자 "교수라고 부르지 마세요. 편하게 애니타라고 부르세요"라고 말문을 열면서 도발적인 어투로 질문에 답하기 시작했다.
―롱테일의 법칙을 반박한 이유가 뭔가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책이 로버트 프랭크의 '승자 독식 사회(The winner take all society)'예요. 스포츠 선수나 기업 등 소수 전문가가 다른 사람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버는 이유를 설명하죠. 저는 '플랜 B'란 없다고 생각해요. '플랜 A'만 있죠.
그런데 앤더슨은 모든 수요가 꼬리에 몰린다고 주장했어요.
그런데 그건 사실이 아니잖아요? 수퍼볼(미식축구 결승전)을 보세요. 수천만 명이 보는데, 인터넷엔 그것과 비교할 게 없어요. 그렇다면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겠어요? 확실한 싸이가 한 명 있어야 해요. 싸이 주변에 시들시들한 콘텐츠 1000개가 있다고 해도 싸이 하나를 못 따라와요."
―롱테일이란 없다는 건가요?
"아뇨, 롱테일은 존재합니다. (그는 종이에 롱테일 그래프를 그리기 시작했다) 문제는 꼬리가 길어질수록 납작해진다는 겁니다. 기본적으로 롱테일 논의에 잘못된 게 있어요. 사람들이 틈새시장 상품을 사용하면 그것만 사용한다는 생각이죠. 그런데 10번 중 9번을 흑백영화만 골라보는 마니아들도 '캐리비언의 해적' 같은 대중 영화를 대단히 좋아해요. 꼬리도 좋아하지만, 머리도 좋아한다는 겁니다. 물론 진짜 대중적인 콘텐츠를 싫어하는 마니아도 있지만, 소수에 불과해요."
―크리스 앤더슨의 프리미엄(freemium)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freemium'은 'free'와 'premium'의 합성어로 95% 범용 서비스는 공짜로 제공하되 나머지 5% 차별화되고 개인화된 서비스를 소수에게 비싸게 팔아서 수지를 맞추는 전략을 말한다.)
"싼 걸 나눠주면서 비싼 걸 파는 것은 오래전부터 있었어요. 대표적으로 면도날이 있잖아요? 면도기는 싸게 팔지만, 면도날은 비싸게 팔죠. 그런데 요즘 문제는 가치가 있고 돈도 받을 수 있는 콘텐츠조차 무료로 뿌린다는 거예요. 진짜 훌륭한 마케터는 제품의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 알아야 한다고 봐요. 마케팅은 결국 별게 아니라 고객을 훈련하는 것이에요."
그가 말을 이어갔다.
"스타벅스는 소비자를 커피 한 잔에 4달러를 지불하는 것이 괜찮다고 훈련시켰죠. 그러나 소비자들은 음원 하나에 1달러를 지불하는 것이 어마어마한 낭비고 사기라고 생각하잖아요? 그 음원 하나는 수백만달러를 지불해 만들었고, 커피는 50센트를 들여 만들었는데도 말이죠. 그러니까 고객들이 '조금 더 싸야 하는데'라고 느끼는 산업은 그 산업 자체가 위기라고 봐야 해요."
작은 베팅이 큰 베팅보다 더 위험하다
―블록버스터를 잘 만드는 엔터테인먼트 기업은 어딘가요?
"월트디즈니의 앨런 혼 회장이에요. 그의 전략은 빅 이벤트 전략이라고 불리죠. 그는 워너브러더스에 있다가 1998년 디즈니로 옮겨 왔는데, 당시 디즈니는 수십 개 영화에 보수적인 금액을 투자하고 있었어요. 예컨대 1년에 영화를 20~25개 찍는데, 디즈니는 총 20억달러를 1억달러씩 여러 영화에 공평하게 투자했어요. 하지만 매출은 240억~250억달러로 제자리걸음이었어요.
그러나 새로 부임한 혼은 좋은 아이디어가 있는 영화에 3억~4억달러씩 '올인'해 투자했어요. 20개 영화 중 3~4개에만 집중 투자하는 겁니다. 그걸 블록버스터 베팅이라고 합니다. 고위험 전략이죠. 이를 통해 지금 디즈니는 400억달러가 넘는 매출을 거두고 있어요. 가장 많이 투자한 작품이 장기적으로 가장 수익률이 좋았기 때문이죠. '스타워즈' 시리즈나 '아이언맨3' 같은 작품들이 그 예죠."
―그런데 고위험이기 때문에 실패 확률이 높잖아요?
"그게 핵심 포인트예요. 작은 베팅을 하는 게 더 위험하다는 게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생각이에요. 1000만~2000만달러 투자하는 영화가 1억~2억달러 투자하는 영화보다 더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는 거죠."
기자가 그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거렸더니 그가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지금 나를 못 믿는 건가요? '어떻게 하버드대에서 이 여자에게 평생 고용을 보장한 거야' 이런 표정인데 지금(웃음)?"
―망한 영화도 많잖아요.
"물론 그렇죠. 그러나 그것보다 더 많이 성공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에요."
―다른 산업보다 훨씬 고위험을 많이 지는군요.
"네. 일반 산업보다 훨씬 더요. 그래서 할리우드 회사 대표들은 모두 실패를 경험한 사람들이에요. 저는 이런 단순한 고위험 정신이 일반 회사에도 있으면 좋겠어요."
―엔터테인먼트 회사는 고객 니즈를 어떻게 분석하나요?
"의외로 소비자 조사를 하지 않아요(웃음). 예컨대 '20% 소비자가 제니퍼 로렌스를 보고 싶어 하고, 80%는 에이미 애덤스를 보고 싶어 한다'는 조사를 하지 않죠. 그냥 매우 단순하게 '이건 과거에 성공했으니 영화로도 성공한다'고 생각해요. 요즘 인기 많은 빅 데이터 이런 것은 별로 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할리우드는 대부분 과거에 조금이라도 사랑을 받은 작품을 재활용하는 경우가 많아요. 적당히 성공한 작품에 올인해 많은 돈을 쏟아 대박 작품으로 부활시키는 거죠. 그래서 비판도 많이 받죠. 똑같은 콘텐츠를 우려먹는다고요. 그 말도 일리가 있지만 비즈니스잖아요? 수익률이 좋아야죠."
―얼마 전 싸이가 하버드대에서 강연했잖아요?
“대단하더군요! 원고를 보지 않아도 청중에게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더군요. 저도 잠깐 싸이에게 인사를 했어요. 그는 정말 진짜 심각할 정도로 떴어요. 제 생각에 머지않아 한국인이 세상을 지배할 거예요. 박지성 선수에 싸이에, 한국은 또 비디오게임을 꽉 잡고 있잖아요. 다음은 뭘까요? 당연히 한국이 세상을 지배하는 거죠. 하하.”
―싸이의 ‘젠틀맨’은 실패했다는 지적도 있는데.
“아니요, 제 생각에 엄청 대단한 거예요. ‘강남스타일’ 성공 이후 엄청 실패할 수 있었죠. 그는 하버드 강연 때 ‘빌보드에서 30위 정도인데 창피하다. 조금 더 위에 있고 싶다’고 이야기했지만, 그는 빌보드에 있잖아요! 저는 실패가 아니라고 봐요.”
―만약 당신이 한국 정부의 창조경제 담당자라면 무엇을 하겠습니까?
“창조산업은 없던 걸 새로 만드는 것이라고 보지 않아요. 이미 있는 것을 1등으로 만들어야죠. 한국은 비디오게임과 음악을 잘하니 거기서 글로벌 리더가 돼야죠. 한국 TV를 세계가 보게 하는 거죠. 브라질은 TV 프로그램을 잘 만들어 어떤 아시아 나라보다 수출을 잘하고 있죠. 한국은 비디오게임 분야가 세계 3위 수준이지만, 너무 저평가돼 있어요.”
☞ 롱테일의 법칙
크리스 앤더슨 와이어드지 전 편집장이 2004년 10월 와이어드지에서 처음 발표한 이론. 인터넷 발전에 따라 소비자의 선택 폭이 크게 확대되면서 80% 평범한 상품이 20% 소수 인기 상품보다 뛰어난 가치를 만들어낸다는 이론이다. 상품을 많이 팔리는 순서대로 가로축에, 판매량을 세로축에 표시해 선을 연결하면 80% 평범한 상품은 긴 꼬리처럼 낮지만 길게 이어지는데, 이 꼬리 부분에 해당하는 상품의 판매량이 20% 인기 상품의 판매량을 압도한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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