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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미래학과 미래전략(실)

[클릭! 취재 인사이드] 청와대와 삼성그룹이 ‘미래전략 수석’과 ‘미래전략실’을 두는 이유는?


[클릭! 취재 인사이드] 청와대와 삼성그룹이 ‘미래전략 수석’과 ‘미래전략실’을 두는 이유는?

  • 이인열 경제부 차장

  • 입력 : 2013.06.19 03:07

    이인열 경제부 차장이 전하는 '미래전략'과 '미래학'

    
	이인열 경제부 차장
    이인열 경제부 차장

    미래학(futures study)을 아십니까? 많은 이들은 ‘미래학’하면 점쟁이를 연상한다고 합니다. 미래학만 50년 넘게 연구해온 미래학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미국 하와이주립대 짐 데이토(Dato) 교수는 이런 얘기에 손사래부터 합니다.

    그가 주장하는 미래학의 제1법칙은 ‘미래학은 예측(predict)이 아니라 예견(forecast) 하는 것이고 발명하는 것(inventible)’입니다.

    미래학이란 용어부터 ‘미래(future)’ 아니라 ‘미래들(futures)’이란 것은 이런 이유에서라고 합니다.

    저는 지난달 13일부터 31일까지 3주간 하와이주립대에서 ‘삼성 미래학연구 이슈과정’에 참여해 데이토 교수를 포함한 10여명의 강사, 3명의 조교, 한국의 언론인 8명과 함께 생활했습니다. 강사진에는 영국에서 온 언론인 출신의 미래학자 사다르 교수, 미국 국방부 정보장교 출신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이 포진했습니다.

    이들과 함께 지속 성장(continued growth), 붕괴(collapse), 변환사회(transformational society), 보존 사회(discplined society)의 네가지 시나리오를 놓고 미래를 상상하고 맘껏 디자인해 보았습니다. 이 과정을 이끈 노(老)교수인 데이토 박사는 1968년 앨빈 토플러와 공동으로 ‘대안미래학교’라는 시민단체를 공동으로 세웠고 1970년대부터 ‘미래학’을 천착해온 개척해온 이 분야의 태두(泰斗)입니다. 미국 내에서 미래학 박사과정이 있는 곳은 하와이대를 포함해 두곳 뿐이랍니다.

    
	하와이 강의 모습
    하와이 강의 모습
    5년후 미래와 30년 후 미래의 차이는?

    가장 기억에 남는 수강생은 이 대학 정치학 석사과정에서 미래학을 전공하고 있는 스티븐 사루파(Sarufa·29) 입니다. 태평양 섬나라인 파푸아뉴기니아 출신으로 90kg이 넘는 체구인 그는 늘 학교식당에서 무스비(주먹보다 작은 밥 덩어리에 스팸 한 장이 붙은 것) 하나로 점심을 떼웁니다. 집값 때문에 학교에서 버스로 2시간 거리에 살고 있어,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등교하더군요.

    저녁마다 하와이 호놀룰루에 이름난 관광명소인 ‘폴리네시안 문화 센터’에서 열심히 아르바이트도 하는 그에게 왜 미래학을 공부하냐고 물었더니, 대답은 이랬습니다.

    “우리나라 정치인 중에서 진짜 미래를 얘기하는 사람은 없다. 대중인기영합주의(populism)에 빠져 ‘오늘, 아니면 내일 뭘 해 줄까’라고 묻고 있다. ‘표’를 위해 필요한 일이, 미래를 위한 일로 둔갑된다. 미래를 제대로 이해하고 논의하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석사학위를 받는대로 귀국해 파푸아뉴기니아에 ‘미래학’을 심을 생각이라는 그는 이 과정의 조교(TA)였습니다. 올해 주제는 ‘30년(1세대) 후인 2043년의 우리의 모습’을 그려보는 것이었습니다. 미래학과 정부, 국방, 지적재산권(Intellectual Property), 종교, 에너지, 로봇 등의 이슈를 섭렵했지요.

    많은 강의 가운데 맛보기로 ‘미래학과 지적 재산권’ 관련 내용을 소개할까 합니다.
    
	글렌 페이지 교수 강의 장면
    글렌 페이지 교수 강의 장면
    3시간 남짓한 ‘지적재산권’ 강의에서 다룬 주요 키워드만 꼽아도 ‘코피미즘(kopimism)’, ‘로봇저널리즘(Robot Journalism)’, ‘MAD(mutual assured destruction·상호확증 파괴)’, ‘해킹은 어느 단계부터 전쟁인가’ ‘액체 민주주의(liquid democracy)’ 등입니다.

    코피미즘은 스웨덴에서 종교로까지 등록된 카피 레프트 단체의 얘기인데, ‘나를 카피하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지적재산권의 해체(解體)를 주창하는 셈입니다.

    로봇저널리즘이란 키워드를 갖고는 만약 정교한 소프트웨어가 장착된 ‘글쓰는 로봇’이 베스트셀러를 써냈다면, 그 책의 저작권은 로봇에 있을까요? 아니면 그 로봇을 만든 인간일까요? 그리고 기사를 쓰는 로봇이 등장해 이들이 각종 언론 보도를 한다면 이 현상을 어떻게 봐야하는가 등을 다뤘습니다?

    미래에는 지적재산권이 국가안보, 국가 자산의 핵심이슈가 될 것이라는 얘기도 설득력있게 제시됐습니다. 미국과 중국간 차세대 분쟁의 핵심은 미사일이나 우주선이 아니라 지적 재산권이란 것이죠. 한 강사는 (중국의 높은 불법 복제률을 거론하면서) “중국의 소프트웨어 비용은 지금 미국이 다 지불하고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해킹이 국가 재산을 침탈하는 심각한 문제가 될 것이며, 미래에는 상대방 영토 공격 만이 아니라 지적재산권을 빼앗아가는 해킹이 전쟁이 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개인적으로 저는 ‘MAD’에 흥미와 공감이 많았습니다. 상호확증적 파괴, 서로가 확신을 하면서 최악의 선택을 하고 결국 모두를 파멸시킬 수 있다는 분석입니다.

    지적재산권을 공유할 때 더 큰 시너지가 생기는데, 저마다 자신의 지적재산권만 강조하면 지식의 공유는 커녕 법적 소송만 이어진다는 논리이죠. 이 문제는 각종 지식이 범람하고, 이해관계가 첨예해지는 현대 사회의 다른 분야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너도 옳고, 나도 옳을 수 있는데, 내가 옳기 때문에 상대방은 틀리다거나, 나의 옳음 외에 다른 옳음을 외면하는 것들 말입니다.

    이런 강의를 들으며 앞으로 직면할 미래의 다양한 시나리오를 각자 그려보는 지적(知的) 호사를 만끽했지요.

    
	페이지 교수가 적어 준 글
    페이지 교수가 적어 준 글
    “미래는 상상하고 디자인하고 발명하는 것이다”

    이번 과정에서 만난 또 하나 인상적인 사람은 글렌 페이지 교수였습니다. 그는 6·25전쟁 당시 미군 장교로 참전해 1년 이상 참혹한 전장(戰場)을 누볐는데 미국의 대학에서 정년 퇴임을 하고 지금은 하와이주립대 명예교수로 있습니다. 하와이대학에서 비(非)살생세계연구소를 만들어 ‘비살생(non-killing)’을 알리고 있습니다. 그는 가장 기억나는 한국 친구를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나의 가장 오래된, 최초의 한국 친구는 1950년 9월 부산에서 만났습니다. 10살쯤 되는 소녀였습니다. 그는 나에게 한글을 하나씩 가르쳐줬습니다. 지금도 기억 나는 노래가 있습니다.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리 집 한 채,~ 내사랑아 내사랑아 나의 사랑 클랜멘타인“

    그는 60년도 더 된 일을 생생하게 기억하며, 노래를 직접 불러줬습니다. 한국어 발음도 대단히 정확했습니다. 그는 올 9월 한국을 다시 찾을 생각인데, 올해로 나이가 85세가 넘어 비행기를 탈 수 있을 지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9월 방한에서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전쟁이 얼마나 참혹하고, 무서운 것인지를, 그리고 왜 전쟁을 다시 일어나서는 안되는지를 들려주고 싶어했습니다. 그에게 미래는 ‘누군가를 살생하지 않는 세상’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도 언제부터인가 새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미래’라는 말이 부쩍 흔해졌습니다. 이명박 정부 때에는 청와대에 미래비전 비서관이, 박근혜 정부에는 미래전략 수석비서관 자리가 생겼고 삼성그룹은 미래전략실이라는 수뇌부 격인 참모조직까지 운영 중입니다.

    우리는 왜 미래를 얘기해야 하고 미래학을 공부할까요? 우리나라에 ‘미래학’이 처음 소개된 것은 1960년대 입니다. 가난을 딛고 막 일어서려는 시기였죠. 우리에게 미래는 ‘발전’과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미래는 ‘불안’의 동의어처럼 쓰이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 미래 자체가 실종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큽니다.

    “30년 후를 고민해본다는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우리 사회가 요즘은 길어야 3~5년짜리 주기로 돌아가고 있지요. 정창영 삼성언론재단 이사장(전 연세대 총장)의 지적입니다.

    미래를 내다보고 연구하는 일은 다양하고, 추상적이고, 때로는 우스꽝스런 일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미래학은 ‘상상하고, 디자인하고, 발명하는 것’이란 정의(定義)가 가능할 것입니다.

    “미래학이란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기 위한 게 아닙니다. 더 나은 미래(preferred futures)를 발명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와이의 화려한 풍광 속에서 열강(熱講)하던 데이토 교수의 모습이 다시한번 떠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