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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재/일-장기불황 닮은 한국경재.

한국 7개월째 1%대(전년 동월 대비) 물가… 日장기불황 초기와 너무 닮았다


한국 7개월째 1%대(전년 동월 대비) 물가… 日장기불황 초기와 너무 닮았다

  • 나지홍 기자 
  • 김태근 기자
  • 입력 : 2013.06.11 03:03

    [高물가 걱정하던 한국, 이젠 低물가 공포… 디플레이션 위기감 고조]

    - 1999년 외환위기 후 최악 
    선진국보다 물가상승률 낮아… 성장률도 8분기 연속 0%대

    - 때려잡기식 물가정책 바꿀 때 
    가격억제 탈피, 물가 오르더라도 경제활력 살리기에 초점 맞춰야

    한국 경제가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때문에 물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현상) 위기에 노출되고 있다.

    외환 위기 이후 처음으로 1%대 물가 상승률이 7개월째(전년 동월 대비) 이어지고 있고, 선진국 모임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보다도 낮은 물가 상승률이 2년째 계속되고 있다. 한국 경제의 이런 모습은 일본이 장기 불황에 빠진 1990년대 초반과 비슷하다.

    일본은 부동산 거품 붕괴 여파로 물가 상승률이 1992년부터 2년 연속 1%대에 머물렀고, 성장률도 0%대로 추락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작년 11월부터 7개월 연속 1%대를 기록, 1999년 외환 위기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이어가고 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올해 연간 물가 상승률이 1%대를 기록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우리 경제성장률도 8분기 연속 0%대 저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우리나라 월별 물가 상승률 그래프
    선진국과 비교해보면 우리나라의 저물가가 심각하다는 것이 더 명확하게 드러난다. 한국의 작년 물가 상승률(2.2%)은 OECD 회원국 평균(2.3%)보다 낮았고, 올해도 이 추세는 계속되고 있다. 물가 상승률이 2년 연속 OECD 평균을 밑돈 것도 외환 위기 이후 처음이다. OECD 회원국은 인구구조가 노령화하고 경제성장률이 낮은 '저성장 저물가 국가'로 분류되는 유럽과 북미의 선진국이 대부분이다. 이런 나라들보다 우리나라 물가 상승률이 낮다는 것은 그만큼 경제 활력이 떨어져 있다는 뜻이다.

    ◇임금·집값만 보면 우리나라는 이미 유사 디플레이션 상태

    물가 상승률이 많이 떨어지기는 했지만 아직 마이너스는 아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낮은 물가 상승률을 계속 방치할 경우 우리 경제가 디플레이션과 유사한 무기력증에 빠져들 것을 우려한다.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실질임금과 주택 가격은 사실상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 근로자들의 실질임금 상승률은 2008년 -8.9%, 2009년 -0.2%, 2010년 3.8%, 2011년 -3.0%, 2012년 3.1%로 최근 5년 새 오히려 쪼그라든 상태이다. 집값도 마찬가지. 2007년 4% 올랐던 집값은 2010년 이후 계속 하락하는 추세이다. 실질임금과 집값만 보면 우리나라는 '유사 디플레이션' 상태인 셈이다.

    ◇경기 침체 가속화하는 디플레이션

    과거에는 "물가가 잡혔다"는 말이 서민들의 생활비 부담이 줄어든다는 의미로 통용돼 희소식이었다. 하지만 최근의 저물가는 우리 경제의 성장 엔진이 식으면서 근로자들의 봉급, 중산층이 장만한 집 가격이 얼어붙은 결과라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디플레이션은 금융과 실물 등 두 경로를 통해 경기 침체를 가속화한다. 먼저 금융 면에선 물가 하락으로 실질금리가 상승하면 채무 상환 부담이 증가한다. 이에 따라 더 손해를 보기 전에 보유 자산을 서둘러 팔려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자산 가격이 더 떨어지는 악순환에 빠진다. 실물경제에서도 디플레이션으로 상품 가격이 하락하면 가계 소비와 기업 투자가 줄어들어 경기가 더 나빠진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경제학)는 "금리가 올라 이자 생활자들이 혜택을 보는 인플레이션과 달리 디플레이션은 모든 경제주체를 피해자로 만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 "때려잡기식 물가정책, 기본 틀부터 뜯어고쳐야"

    저물가 우려가 경제 전문가들 사이에선 널리 퍼져 있지만 정부는 아직도 '때려잡기식' 물가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개학 철이 되면 교복과 학원비를 단속하고, 여름철이 되면 채소 값, 과일 값을 살피는 식이다. 정부 관계자는 "물가는 무조건 낮아야 한다는 고정관념 탓에 정부가 '물가가 다소 올라도 경제 활력을 살리겠다'고 말하지 못하는 면이 있다"고 말했다.

    한 전직 경제부처 장관은 "서민의 물가 고충 해결을 위해선 소득을 늘려주고 실생활에 밀접한 품목만 미시적으로 대처하는 식으로 물가정책 틀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플레이션(Inflation)·디플레이션(Deflation)

    물가 수준이 지속적으로 올라 경기가 과열되는 현상을 인플레이션이라 하고, 물가가 지속적으로 떨어져 경제가 위축되는 현상을 디플레이션이라고 한다. 과거 디플레이션은 현실화된 사례가 드물었지만, 최근 세계경제가 장기 침체에 빠지면서 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