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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멋진 우리 지명 (고대 이집트 숫자)

"시행 8개월 앞둔 道路名 주소… 땅이름 훼손·불편"

"시행 8개월 앞둔 道路名 주소… 땅이름 훼손·불편"

  • 곽래건 기자

    입력 : 2013.04.26 03:01

    [한국땅이름학회 등 반대단체, 중단·재수정 요구]

    시행 반대단체 주장 - "내비게이션으로 길 쉽게 찾아
    바꾸면 오히려 힘들어질 뿐… 지명에 담긴 의미도 사라질 것"

    안행부 "고치기엔 늦었다" - 이미 법적 주소로 인정하고 공공기관 대부분 업무 반영

    내년부터 전면 시행 예정인 정부의 도로명 주소 정책을 놓고 다시 논란이 일고 있다. 한국땅이름학회는 25일 서울 종로구 한글회관에서 학술 발표회를 열고 '도로명 주소 도입 정책을 즉시 중단하거나 전면 재수정하라'는 결의문을 발표하는 등 이 정책 반대세력의 선두에 섰다.

    도로명 주소 개편은 1996년 7월 처음 논의되기 시작해 전면 시행을 8개월여 앞두고 있다. 일제강점기 토지조사 사업을 하며 도입된 종전의 지번 주소가 급속한 도시발전으로 배열이 불규칙해져 위치 정보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고 봤기 때문이다.


    
	쟁점에 대한 한국땅이름학회와 안전행정부의 입장 표
    한국땅이름학회는 이날 결의문을 통해 "도로명 주소에 법정동 이름이 모두 빠지는 것은 우리의 무형 유산인 땅 이름을 훼손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도로명 주소는 종전 지번 주소와 시·군·구 및 읍·면까지는 동일하지만 리(里)나 지번 대신 도로명과 건물 번호를 사용한다.

     

    '원효로4가 ○○번지' 식의 기존 지번 주소는
    '효창원로 ○○가길 ○'이라는 식으로 바뀐다. 배우리 한국땅이름학회 회장은 "큰길 위주로만 주소를 매기다 보니 지명의 절대수가 줄어 조상들 숨결이 밴 고유 이름들이 사라지는 결과를 가져왔다"며 "주소에서 안 쓰기 시작하면 입에서 멀어져 점차 잊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쉬운 길 찾기를 목표로 도입된 도로명 주소 정책이 오히려 길 찾기에 불편을 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 서울 강남구 언주로6길은 구룡터널 입구에, 언주로174길은 성수대교 남단 부근에 위치해 있다. 도로명을 듣고 위치를 짐작할 수 있어야 하지만 6㎞가 넘는 거리가 같은 도로명을 쓰고 있다. 테헤란로의 경우 테헤란로 바로 뒷건물이라 하더라도 '강남대로○○길'이라는 주소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강남대로보다는 테헤란로와 가깝지만 이면도로가 테헤란로가 아닌 강남대로와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도로명 주소 도입이 논의되던 1990년대 후반이나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지번 주소로 길 찾기가 어려운 게 사실이었지만, 스마트폰·내비게이션 등이 대중화돼 지번 주소를 찾는 데도 어려움이 없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훈민정음연구소 반재원 소장은 이날 학술 발표에서 "8차선보다 큰길은 대로(大路)로, 2~7차선은 로(路)로, 그보다 좁은 곳은 길로, 길이 넓어질수록 한자어를 쓰는 것도 우리말을 천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안전행정부는 "정책을 되돌리기엔 너무 멀리 왔다"는 입장이다. 지금까지 들어간 예산은 물론 도로명 주소가 이미 법적 주소로 인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면 시행은 내년이지만 정부부처, 지방자치단체, 국회, 법원 등 공공기관들은 대부분 도로명 주소로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도로명 주소에 대한 국민 인식은 아직 낮다. 작년 12월 안전행정부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자기 집 도로명 주소를 정확히 알고 있다고 응답한 사람은 조사 대상 중 32.5%에 그쳤다. 길을 찾거나 우편물을 보내고 민원서류를 발급받을 때 도로명 주소를 사용했다는 사람은 22.6%였다. 안전행정부 관계자는 "정책 자체를 중단하기보다는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국민에게 적극적인 홍보를 해야 하는 게 시기상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