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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재/삼성 이건희회장.

"이건희, 묻고 또 묻고 5번…그것이 통찰력 원천"

"이건희, 묻고 또 묻고 5번…그것이 통찰력 원천"

  • 연선옥 기자

    입력 : 2013.04.16 19:01

    40년 삼성맨 손욱 교수가 지켜본 '삼성 리더십'

    손욱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교수./조선일보 DB
    손욱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교수./조선일보 DB
    “1993년 프랑크푸르트 선언이 나오기 전, 이건희 회장은 임원 200여명을 모아놓고 68일 동안 매일 회의를 열었습니다. 대통령이 나라를 바꿔보겠다면 각 부처 장관 모두 모아서 열흘 동안 치열하게 토론해봐야 해요. 장관 없다고 부처 일이 안 돌아가는 것 아니에요. 오히려 더 잘 돌아갑니다.”

    손욱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교수는 16일 조선비즈와 인터뷰를 갖고 “이건희 삼성전자(005930) (1,486,000원▼ 32,000 -2.11%)회장이 20년 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신(新)경영’을 선언하며 삼성을 혁신시킨 것처럼 리더가 구성원에 창의적인 역량을 발휘하도록 한다면 그 조직이 기업이든 나라든 성장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엔지니어 출신으로 1967년 삼성에 입사한 손욱 교수는 40여년 간 삼성에서 몸담으며 이병철 창업주와 이건희 회장을 지척에서 수행한 ‘정통 삼성맨’이다. 10년간 매년 500억원의 적자를 내던 삼성전관(지금 삼성SDI)을 1년 만에 흑자 전환하며 ‘최고의 테크노 CEO’, ‘한국의 잭 웰치’라는 별명도 얻었다. 삼성전관 사장을 지낼 때 황창규 당시 삼성반도체연구소장을 찾아가 반도체 세계 1등을 만든 비결인 ‘수요 공정회의’를 벤치마킹해 삼성전관의 혁신을 이끌었다. 삼성종합기술원장과 삼성인력개발원장을 지냈고, 2008년에는 농심에 영입돼 2년간 대표이사 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키 185cm에 이르는 장신인 손욱 교수는 인터뷰 내내 큰 손동작을 사용해 삼성의 혁신과 이건희 회장의 리더십에 대해 설명했다.

    1993년 이건희 회장은 미국 로스앤젤레스 전자 상가 바닥에 방치된 삼성 제품을 보고 ‘이대로 가면 삼성은 망한다’는 위기를 느꼈다. 이 회장은 삼성전자 관계사 임원 200여명을 프랑크푸르트에 집합시켰다. 이들은 68일간 유럽과 일본에서 세계 1등 제품을 직접 경험했다고 밤마다 뼈저린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프랑크푸르트 호텔 지배인이 “당신들 무슨 종교집단이냐”고 물은 적도 있다.
    이건희 회장이 2011년 신종균 당시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장(오른쪽)에게 스마트폰에 대해 설명듣는 모습./삼성전자 제공
    이건희 회장이 2011년 신종균 당시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장(오른쪽)에게 스마트폰에 대해 설명듣는 모습./삼성전자 제공
    그리고 그 해 6월 7일 이건희 회장이 내린 결론은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모두 바꾸라”였다. 이른바 프랑크푸르트 신경영 선언이다. 당시 이 회장의 수행팀장이었던 손욱 교수는 50대 초반의 나이에 30시간 이상 잠을 자지 않고 혁신을 강조했던 이건희 회장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손 교수는 리더의 위기의식과 처절한 반성, 그리고 혁신이 오늘날 세계 최고 삼성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올 6월 프랑크푸르트 선언 20년이 된다.

    ―40년간 고(故) 이병철 창업주와 이건희 회장을 모두 겪은 ‘삼성맨’이다. 두 사람은 무엇이 달랐나?

    “이병철 회장은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전환하는 시기에 ‘관리의 삼성’을 외쳤고, 이건희 회장은 산업사회에서 정보사회로 넘어가는 시기에 ‘전략’과 ‘창의’를 강조했다. 시대 흐름에 따라 이병철 창업주와 이건희 회장의 리더십은 천지 차이일 수밖에 없다. 나는 삼성이 창업주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절묘한 바통터치’가 이뤄졌고, 여기에 이건희 회장이 ‘자율 경영’이라는 알파를 더한 덕분에 삼성이 ‘월드 베스트’로 성장했다고 본다.”

    ―지금을 융합 시대라고 한다.

    “이건희 회장은 1990년대 이미 융합을 말했다. 다른 기업의 연구센터가 산재해있을 때 이건희 회장은 복합연구단지를 만들었다. 물리적인 거리만 줄인 게 아니라 마음이 통하는 진짜 융합을 꾀한 것이다. 지난주 중국 톈진(天津)에 다녀왔다. 이미 ‘삼성 왕국’이 돼 있더라. 우리는 모여서 융합 능력을 발휘하는 데 강하다.”

    ― 이건희 회장의 통찰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이건희 회장은 보고를 받을 때 적어도 다섯번 ‘왜’냐고 물어본다. 다섯 수 이상을 내다보는 것이다. 이런 통찰력은 토론에서 나오는 것 같다. 생각과 토론이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건희 회장은 토론할 때 1인용 소파보다 3인용 소파에 앉는다. 관계자들을 두루 보며 토론을 즐기는 것이다. 토론은 새벽 2~3시까지 이어진다.”
    이건희 회장이 지난 6일 수행원의 부축을 받으며 서울 김포공항으로 귀국하고 있다./오종찬 기자
    이건희 회장이 지난 6일 수행원의 부축을 받으며 서울 김포공항으로 귀국하고 있다./오종찬 기자
    신경영 선언 20주년이다. ‘창의’ 이후 삼성은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까.

    “두뇌 혁명이 필요하다. 삼성은 일본·미국에서 개발된 것을 열심히 따라가 1등은 했다. 반도체·TV·휴대전화 모두 마찬가지다. 그런데 인류 문명에 기여하는 새로운 것, 이른바 ‘도미넌트 디자인(dominant design)’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이건희 회장은 ”삼성이 세계 1등을 했지만, 게임의 룰을 바꾼 적은 있는가”라는 질문을 여러 번 했다. 흑백 TV와 브라운관 TV 모두 사라졌다. 삼성이 스마트폰으로 돈을 많이 벌고 있지만, 미래에 휴대전화가 없어져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의사소통 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의 창의성이 ‘싸이’ 열풍으로 이제 막 시작되고 있다. 과학 기술계에서도 터질 때가 됐다. ‘드림(dream) 혁명’도 중요하다. 꿈을 실현해 모든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이 행복한 방향으로 가야 한다. 지금 ‘국민행복’이 국정 화두로 떠오르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 국민행복을 말하는 정부가 기업 규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은 기업이다. 기업이 신바람 나야 하는데 너무 규제가 많다. 법과 룰이 투명하게 운영돼야 하는 것은 맞지만, 이것이 기업에 규제로 작용해선 안 된다. 내가 삼성전관 사장일 때 이건희 회장은 딱 한마디 했다. “기술은 왜 소니가 1등이냐?” 리더는 목표만 제시한다. 실무진은 이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한다. 신경영 역시 ‘양이 아니라 질 100%’라는 목표 하나뿐이었다. 어떻게 질을 높이는지 세세하게 지시하지 않는다. 리더가 지엽적인 것을 말하면 창의가 죽는다.”

    그는 중소기업이었던 삼성이 세계적인 기업이 된 것과 같이 우리 중소기업이 끊임없이 혁신해야 한다고 말했다.

    “삼성은 세계 1등 제품에 가치를 더하는 혁신을 끊임없이 단행했다. 하지만 지금 중소기업들은 너무 가만히 있다. CEO가 배우려고 하지 않으면 정체된다. 중소기업도 지금 자기 방식만 고집하지 말고 배우고 혁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