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02.27 03:04
기업 출신의 관료 성공한 사례 진대제 前 장관 말고는 드물어
'기업과 정부'의 차이에 더해 '한국과 미국' 문화적 벽
넘어야
우리 사회, 인재 활용 범위를 세계로 넓힐 방안 고민할 때
김기천 논설위원

클린턴 행정부에서도 로버트 루빈 재무장관과 어스킨 볼스 비서실장 등 기업인들이 내각과 백악관의 요직(要職)에 올랐다. 재무·상무장관은 물론 국무·국방·환경·내무장관으로 기업인이 발탁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선 관료 출신이 기업으로 자리를 옮기는 경우는 많아도 그 반대 경우는 드물다. 역대 행정부를 통틀어 기업인 출신 장관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그마저도 대부분 관료주의의 벽에 부딪혀 뚜렷한 업적을 남기지 못했다. 기업에서 성공한 방식이 정부에선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 셈이다.
예외가 있다면 진대제 전(前) 정보통신부 장관을 들 수 있다. 삼성전자 사장 출신인 그는 재벌 대기업과 대립각을 세웠던 노무현 정부에서 3년여 재직하며 최장수 장관 기록을 세웠다. 진 장관 재임 시절 정통부는 정부 내에서 가장 발언권이 센 부처로 꼽힐 정도로 위상이 달라졌다. 업무 영역을 둘러싼 파워게임에서 다른 부처들을 압도하며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진 장관은 '8대 신규 서비스, 3대 인프라, 9대 신성장 동력'으로 우리 경제의 비전과 희망을 제시한 'IT 839 전략' 등을 추진해 한국이 IT 강국으로 발돋움하는 데 기여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정통부 업무 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잘한다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이렇게까지 잘하는 줄은 몰랐다"며 극찬하기도 했다.
그런 진 장관도 관료 사회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삼성에선 미래를 생각하느라 과거를 돌아볼 시간이 없었는데 장관이 되니까 과거 이야기를 하느라 미래를 생각할 틈이 없다"고 했다. 감사원의 감사를 받고 국회에 불려 나가느라 정신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기업에선 사소한 잘못 아홉 개를 해도 중요한 일 하나를 잘하면 승진할 수 있는데 정부에선 중요한 일 아홉 개를 잘하고도 작은 일 하나를 잘못하면 목이 날아간다"고도 했다. 작은 실책을 크게 부풀려 무거운 책임을 묻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김병준 국민대 교수가 전한 이야기다.
25일 출범한 박근혜 정부의 내각 인선에서 가장 화제를 모은 인물은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다. 미래부는 새 정부의 5대 국정 목표 중 첫째인 '일자리 중심의 창조 경제'를 책임져야 할 부처다. 정보통신기술(ICT)과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새로운 성장 동력과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의 성패(成敗)가 여기에 달렸다. 김 후보자의 어깨가 무거울 것이다.
김 후보자는 미국에서 벤처 기업인으로 성공했고, 세계적인 벨연구소의 사장으로 화려한 경력을 쌓았다. 미래부를 이끌어가는 데 부족함이 없는 능력과 리더십, 도전 정신을 보여줬다. 그러나 미국에서도 기업인 출신 장관의 성공 사례는 많지 않다. 더욱이 김 후보자는 '기업과 정부'의 차이에 더해 '한국과 미국'의 문화적 차이라는 또 하나의 벽을 넘어야 한다.
그래서 김 후보자가 다시 한 번 성공 신화를 이뤄낼 수 있을지 더 주목된다. 물론 일차적으론 본인의 역량이 중요하지만 인맥(人脈)으로 얽혀 외부 인재가 발붙이기 힘든 한국적 조직 문화도 큰 변수가 될 수 있다. 김 후보자의 노력과는 별개로 우리 사회도 이제는 인재 활용 범위를 전 세계로 넓혀나갈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할 때가 됐다. 이중국적을 문제 삼는 것 같은 촌스러움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한국 경제가 미래를 열어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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