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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정치(국회)

[특파원 칼럼] 의원들의 '歲費 희생'

[특파원 칼럼] 의원들의 '歲費 희생'

  • 임민혁 워싱턴특파원

    입력 : 2013.02.07 22:43

    임민혁 워싱턴특파원
    최근 뉴욕타임스(NYT)를 보다가 '세비(歲費) 중단? 대부분 의원에게는 별 희생도 아니다'는 흥미로운 제목의 기사에 눈길이 확 쏠렸다. 미 의회가 '예산안을 통과시키기 전까지 자신들에 대한 세비 지급을 중단한다(No budget, no pay)'는 법안을 통과시킨 것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의원들이 자신들의 의무 이행을 촉진하기 위해 당장의 출혈(出血)을 감수하겠다는 데 동의했다면 박수를 쳐주지는 않아도 긍정적으로 봐줄 만도 하지만 NYT 기사는 시종일관 냉소적이었다. 이 법안을 주도하고 찬성한 의원들은 세비 정도는 '껌값'으로 여길 수 있는 갑부들이 대부분이라서 기껏해야 몇십일 동안 보수를 포기하는 것으로는 별다른 감흥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NYT에 따르면 하원에서 이 법안 상정을 주도한 데이브 캠프(공화·미시간) 의원의 재산은 970만달러(약 106억원), 상원의 주도자인 조 맨친 3세(민주·웨스트버지니아) 의원의 재산은 1170만달러(약 128억원)였다. 미 책임정치센터(CRP)에 따르면 미 의원들의 자산 가치 평균은 90만달러(약 98억원)이며, '평균 이상'인 의원들은 대부분 이 법안에 적극적으로 동조했다. 반면 하원에서 가장 가난한 의원 중 한 명인 제럴드 네이들러(민주·뉴욕) 의원은 "예산안 통과 압박이라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이런 식으로 한다면 백만장자들만 의원을 하라는 얘기"라며 반대 의견을 밝혔다.

    실제로 미 의회의 이번 법안은 바닥에 떨어진 의회 신뢰도를 조금이나마 회복시키기 위해 '쇼' 차원에서 기획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올 초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의회 세비를 0.5% 인상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자 의원들이 "미국의 가정이 힘든 시기를 겪는 동안 세비를 올리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라며 스스로 이를 마다한 것을 생각하면 미 의원들의 이런 움직임을 마냥 삐딱하게만 볼 것은 아니다.

    미 의회의 이런 동향에 더 눈길이 간 것은 아무래도 한국 국회 상황과 겹쳐 보이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국회 공직자윤리위원회에 따르면 현 19대 국회의원들의 평균 재산은 500억원 이상 자산가 4명을 제외하고도 18억3295만원이다. 미 의원들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우리나라 가구당 평균 재산(2억9765만원)의 6배가 넘는다. 이런 가운데서 지난해 국회는 전년보다 세비를 16%나 올렸다. 대선을 앞두고는 여야가 모두 '세비 30% 삭감'을 약속했지만 대선 후 이에 대한 논의는 실종됐고 새해 예산에 전혀 반영하지 않았다.

    의원들이 국민의 대표로서 제 역할을 다한다면 세비 갖고 욕먹을 일은 없겠지만, 지금 분위기가 그렇지 않다는 걸 의원들이 모를 리 없다. 오죽하면 올 초 톱스타 연예인들의 열애설이 터졌을 때 "국회의원연금법 통과에 따른 비난을 덮기 위해 국회가 뒤에서 흘린 것"이라는 음모론까지 나왔을까. 여러 면에서 국민을 짜증 나게 하는 건 미국 의회나 한국 국회나 별 차이가 없지만 역시 한국 의원들이 '한 수 위'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