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01.21 16:35
◆ 국민 개인은 유럽 최고 부자
유럽연합(EU) 본부가 있는 벨기에는 유럽에서 작지만 부유한 나라로 유명하다. 특히 국민 개개인의 소득이 높다. 프랑스 일간지 르피가로(Le Figaro)는 18일(현지시각) 유럽 통계청을 인용해 “지난해 벨기에 국민 개인당 재산 평균이 6만7158유로로 유럽에서 가장 많았다”고 보도했다. 2위 네덜란드(6만1219유로), 3위 룩셈부르크(6만366유로)를 큰 차이로 따돌렸다. 이 액수는 현금성 자산만을 집계한 것으로 부동산은 포함되지 않았다. 유럽 통계청은 "지난해 벨기에 국민은 낮은 금리에도 수입의 15.6%를 저축했다"고 밝혔다.
벨기에의 저축률이 높은 것은 그밖에 다른 마땅한 투자처가 없기 때문이다. 벨기에 부동산 가격은 주변국들에 비해 너무 낮아 투자 매력이 떨어진다. 벨기에 일간지 르수아르(LeSoir)는 "지난해 벨기에 부동산 가격이 평균 5~10% 하락했다"고 전했다.
무엇보다도 개인 평균 재산이 유럽에서 가장 높게 나온 주요 원인은 낮은 소득 세율이다. 벨기에의 금융소득 세율은 21%로, 조세 회피처로 알려진 스위스와 맞먹을 정도. 또 부유세가 없고 상속세율도 유럽 역내에서 가장 낮은 편에 속한다. 다른 나라들보다 개인이 부를 축적하는 데 더 유리한 환경을 갖추고 있다는 설명이다.
프랑스 부호들이 벨기에를 세금 도피처로 애용하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최근 프랑스 정부가 연소득 100만유로 이상 고소득층에 75%의 높은 세율을 부과하려 하자 베르나르 아르노 LVMH 회장과 프랑스 국민배우 제라르 드파르디유가 벨기에 국적을 신청했다. 르피가로는 "부자를 존중하는 문화가 있는 벨기에로 프랑스 부자들이 몰리고 있다"면서 "수도 브뤼셀에는 프랑스 부자들이 옮겨 온 미술품이 넘치고 있다"고 전했다.
◆ 국가 재정위기 심각…부자세 도입키로
하지만 벨기에의 ‘부자 존중’ 문화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벨기에 정부도 이제 더는 낮은 세율을 고집할 수 없는 상황이다. 재정난 때문이다. 국가 부채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98%에 육박했다.
지난해부터 공식적으로 경기 침체에 들어간 벨기에는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 0.2%를 기록했다. 벨기에의 주요 성장 동력은 해외 투자나 무역인데, 유로존 재정 위기가 장기화하면서 수출이 줄어든 탓이다. 더불어 건설업과 제조업 등 주요 산업의 위축과 기업투자, 가계소비의 감소도 타격이 됐다.
벨기에 정부는 자구책의 하나로, 연 2만20유로(약2800만원) 이상의 주식 배당이나 이자 소득에 대해 25%의 세율을 적용하기로 했다. 이른바 '부자세'다. 또 증권 거래세율도 0.25% 인상하고 과세 한도 최고액도 650유로에서 740유로로 올렸다. 이밖에 세수를 늘리기 위한 법안을 의회에서 논의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유럽 부호들의 세금 도피처’라는 오명도 증세 움직임에 힘을 더하고 있다. 벨기에 의회는 "벨기에 문화를 존중하지 않고, 단순히 세금 때문에 국적을 신청하는 자에게 허가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특히 네덜란드어권 국민의 반발이 거센 것으로 알려졌다. 벨기에는 크게 네덜란드어권과 프랑스어권으로 나뉘는데 두 지역은 역사적으로 마찰이 잦다.
벨기에 데그루프 은행 이코노미스트 에티엔 드칼라타이는 “벨기에는 가계 저축률이 높아 경제 위기를 조금 완화할 수는 있을 것”이라며 “하지만 벨기에 경제도 유로존 위기의 영향을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세수 확보는 불가피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