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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외국여행

[해외리포트ㅣ일본 와카야마현 구마노고도, 고야산 트레킹 ②]

[해외리포트ㅣ일본 와카야마현 구마노고도, 고야산 트레킹 ②] 순례자들의 호흡이 깃든 원시림을 걷다 월간마운틴|글•사진 이갑수 협찬 혜초여행사ㆍ와카야마현|입력2013.01.11 16:06|수정2013.01.11 16:21

 
수백년 된 삼나무가 울창한 구마노고도

구마노고도 순례길을 본격적인 체험은 나카헤치 중간지점인 유노미네 온천에서 시작된다. 1,800년경에 세워진 유노미네 온천은 원천을 중심으로 조그마한 마을이 이룬다. 유노미네 온천의 원천과 계곡을 따라 좌우로 료칸들과 조그마한 식료품점이 들어서 있다. 원천 바로 옆 가게에서는 붉은 색 망에 옥수수와 고구마, 계란 등을 판매하고 있는데, 이것들을 원천이 나오는 곳에서 직접 익혀 먹을 수가 있다. 90도가 넘는 원천에 담그니 몇 분 만에 맛난 삶은 달걀이 만들어진다. 원천 윗부분에 위치한 츠보유라는 조그마한 탕은 순례자들의 세정 의식에 사용되었는데, 그 물의 색이 하루에 일곱 번 변하며 병을 낫게 하는 효험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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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야산에 있는 수령 700년의 거대한 삼나무


나카헤치의 일부인 아카기고에 구간은 유노미네 온천마을 도로변에서 시작된다. 마을 소로길을 따라 암반길을 지나가니 10m 넘는 삼나무가 빽빽한 길이 나타난다. 구마노고도 순례길에는 500m 마다 표지목이 설치되어 있어 가이드북만 있으면 길을 찾아가기 어렵지 않다.

구불구불한 숲길로 이어진 구마노고도는 포장이 되지 않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 등산로는 대부분 자연암석과 마사토가 섞인 흙길로 되어 있어 길을 걷는 내내 기분 좋은 트레킹을 할 수가 있다. 삼나무 숲을 지나 30분가량 오르니 금새 능선에 다다른다. 아스라이 멀어지는 첩첩산중 사이로 해무가 넘실대는 광경이 펼쳐진다. 흐르는 땀을 씻어내며 시원하다못해 청량감이 느껴지는 구마노고도의 숨결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과연 신령한 땅이라 불릴만하다.

길을 걷다보니 동네 주민으로 보이는 할아버지가 잔가지를 주우며 순례길을 정비하고 있다. 안내인 브래드의 설명에 의하면 구마노고도 순례길은 자원봉사자들과 관광부 직원에 의하여 관리된다고 한다. 자연을 관리하되 크게 손상시키지 않고, 우리 아버지가 지키고 가꾸어왔듯이 자신의 세대에서도 지키고 가꾸는 것. 구마노고도는 그렇게 만들어져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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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마노고도 나카헤치 구간의 한 언덕에서 바라본 시골마을의 차 밭 정경


삼나무 숲속을 걷다보니 외딴 곳에 세워진 집 한 채가 눈에 들어온다. 카키하라자야 찻집이라는 곳인데 에도시대(1603-1868)에 순례객을 대상으로 차를 팔던 유명한 곳이다. 지금은 순례객보다도 관광객이 지나가는 이곳은 빈집으로 남아 텅텅 비어있다. 빈 찻집이 왜 이렇게 남아있는지 의아하여 브래드에게 물어보자 이 곳은 사유지인 까닭에 나라에서 손을 대지 않는다고 한다. 두 가지가 놀라웠다. 하나는 문화유산이 이렇게 가까이에 있는데도 사유지를 인정해주는 일본정부의 태도였고, 사유지임에도 자연그대로 유지하고 보존하는 후손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길가 중간에는 돌로 만든 지장보살이 나타난다. 턱에 붉은색 천으로 둘려있고, 석집으로 보호가 되기도 하는 이 지장보살은 아이들과 순례자들을 지켜준다고 한다. 일본의 도심이나 시골, 어디를 가든 자주 볼 수 있는 지장보살. 일본인들은 지장보살을 만나면 박수를 천천히 두 번 치고, 일 배를 한 뒤 다시 박수를 한번 치며 아이들과 순례객들의 안녕을 빈다.

아카기고에 분기점에는 화장실과 너른 공터가 있는 장소에서 잠시 쉬어갈 수 있다. 한쪽에는 나무로 만들어진 배가 있는데, 축제(마츠리)기간이 되면 마을청년들이 이 곳 산에 올라와서 나무로 배를 만들어 바다에 띄운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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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카기고에 구간의 신비스러운 해무가 골짜기를 따라 넘실대고 있다.


홍수를 피해 산으로 오른 구마노혼구 대신사

홋신몬오지에 도착한다. 구마노혼구 대신사로 가는 중요한 관문인 홋신몬오지는 불교의 '발심문'이라는 곳으로, 밀교에서는 발심, 수행, 보리, 열반의 네 단계 가운데 첫 번째 단계를 의미한다. 홋신몬오지를 지나 구마노혼구 대신사를 찾아 가본다.

조그마한 일본의 시골마을은 사람이 거의 보이질 않고 지극히 평화롭다. 조그마한 일본의 집들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깨끗하고 소담한 멋을 가지고 있다. 특이한 것은 마을에서 기르는 작물의 종류가 상당히 다양하다는 점이다. 벼, 매실나무, 녹차, 감, 고추, 귤, 유자 등 조그마한 밭들에 여러 가지 작물을 심고 기르고 있다.

마을 중간 중간에는 무인가판대가 설치되어 있다. 마을에서 생산되는 우메보시(매실장아찌), 녹차, 수공예품 등과 요금통이 함께 놓아져 있다. 마음에 드는 물건을 집고 해당되는 금액을 요금함에 넣으면 된다. 마을 언덕에 위치한 후시오가미자야 찻집은 순례객들이 쉬어가는 곳으로 온천수 커피와 현지 산물을 판매한다. 비교적 저렴한 200엔에 판매되는 쌉쌀한 온천수 원두커피는 이곳의 명물이다. 찻집의 옆 언덕에는 오유노하라가 내려다보이는 전망대가 있다. 이곳은 오유노하라가 처음으로 보이는 언덕으로 순례객이 꼭 여행의 안녕을 기원하고 지나간다.

유노미네온천을 떠난지 5시간 40분이 지나서 구마노혼구 대신사에 도착한다. 구마노혼구 대신사는 고대에 창사된 이래 오유노하라에 있었으나, 1889년 대홍수 이후 가미욘샤 3동을 현재의 위치인 산속으로 옮겼다고 한다. 울창한 삼나무 숲에 둘러싸인 구마노혼구 대신사는 엄숙하고 경건했다. 구마노혼구 대신사를 포함한 구마노 삼산은 일본 전국 약 3천개에 이르는 구마노신사의 총본사로 중세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들이 찾는 것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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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야산 중심부에 위치한 단조가란에는 다양한 형태의 목조건물들이 줄지어 있다.


벚꽃문양의 커다란 차양이 드리워진 문을 지나 본관으로 들어가자 세 채의 목조건물이 순례객을 맞이한다. 날렵하면서도 절도있게 올라간 지붕의 곡선이며, 용마루의 목재에 칠해진 금박 장식, 기둥과 처마에 새겨진 살아있는 듯한 문양들은 일본건축양식의 정수를 보여준다. 지붕은 모두 삼나무의 껍질을 벗겨내 만들었다는데, 그 이음새를 찾아볼 수가 없을 정도로 정교하다.

구마노혼구 대신사가 원래 있던 곳은 구마노강, 오토나시강, 와다강의 합류점인 오유노하라는 모래톱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는 높이가 33.9m에 이르는 거대한 토리와 대신사터, 석탑 몇 기 등이 남아있다.

산 위에 세워진 종교도시, 고야산

고야산은 특정한 산이 아닌 와카야마현 이토군 고야초에 위치한 8개의 봉우리에 둘러싸인 분지 지역을 가리킨다. 고야산은 1,200여년간 신앙의 산으로 여겨져 왔으며, 일대는 산 위의 종교도시로 다수의 사원과 신사가 들어서 있다.

신령한 땅으로 불리는 고야는 진언밀교를 창시한 홍법대사 구카이 816년에 창건한 곤고부지, 산 아래에 건설한 지손인, 간쇼후쇼를 보좌하는 니우칸쇼후신사, 고야산을 보호하는 신사로 알려진 니우츠히메 신사로 구분된다.

오쿠노인은 홍법대사 구카이의 묘가 있고, 주변으로 20만기 이상의 묘들이 500년 가량의 삼나무 숲과 함께 펼쳐져 있다. 주로 황실, 귀족, 무사들의 묘들이 많이 있으며, 과거에는 일반인도 묘를 사용하기도 했으나 현재는 가격이 워낙 비싸기에 대기업 회장 정도나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일본인은 이곳에 묘를 쓰는 것을 가문의 영광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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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노미네온천의 츠보유 탕은 구마노고도 순례자들의 세정의식에 사용되는 장소로 온천색이 하루에 일곱 번 변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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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마노고도관에 진열된 전통 순례자의 복장. 관람객들이 직접 착용해볼 수 있다.


석탑, 석집, 커다란 구슬, 불상, 비석 등 온갖 종류의 다양한 비석들이 끝도 없이 즐비해서 서있고 수령 500년이 넘은 거대한 삼나무들은 그 위용을 자랑하며 하늘을 찌를 듯 서있다. 하얀색의 장삼을 걸치고 나무 지팡이와 가사를 걸친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들이 순례를 하는 모습이 여기저기에서 뵌다. 홍법대사 구카이의 묘가 있는 곳은 특히 침묵의 장소로 여겨지고 카메라 촬영도 금지될 만큼 엄숙한 분위기다.

과거부터 고야산은 신성한 산으로 여겨져 1872년까지 여인의 출입이 금지되었다. 때문에 홍법대사의 구카이 묘를 순례하기 위한 여신도들은 고야산 주변의 산을 에두르는 18km의 여인도를 지났다. 고야산 분지자체가 800m 이상의 지대이기에 여인도 역시 800~1,000m 정도의 능선이 이어지는 코스를 지니고 있다. 삼나무와 편백나무, 코우야마키라는 세계적으로 희귀한 원시소나무를 마음껏 구경하며 트레킹을 즐길 수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