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렷한 이목구비, 수준급 한국어 예사롭지 않더니만…
- [월간기획 ‘다문화 성공스토리’]⑥ 우즈베키스탄 출신 배우 딜도라 씨
[안산]배우 딜도라 씨(26)의 첫 인상은 마치 풋풋한 스무 살 여대생의 느낌이었다. 편안한 캐주얼 복장에 운동화, 어깨에는 백팩을 매고, 한 손에는 책 한 권을 든 그녀의 모습은 갓 소녀티를 벗은 영락없는 20대 초반의 대학생으로만 보였다. 그녀가 4살 된 아이를 둔 엄마라는 사실을 알게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우즈베키스탄 출신의 딜도라 씨는 2008년 한국 남자와 결혼해 한국에 정착한 외국인 며느리이다. 그리고 다문화 가정 여성으로는 보기 드물게 ‘영화배우’라는 직업을 가진 몇 안 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최근 한국사회가 다문화 가정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면서 결혼이주여성들의 취업률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배우의 꿈을 현실화시킨 그녀의 삶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지난 주말 서울 사당동의 한 커피숍에서 만난 그녀는 영화 ‘한국에서 온 며느리’의 촬영을 막 끝내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뚜렷한 이목구비에 다부진 몸매, 명랑한 말투가 한눈에 봐도 예사롭지 않은 인물이라는 점을 느끼게 한다.
딜도라 씨는 지난 2008년 우즈베키스탄의 한 예술대학(Uzbekiston Davlat Sahat Instituti)을 졸업했다. 전공은 연기. 그녀는 사실 우즈베키스탄에서는 꽤 잘 나가는 배우였다. 대학 재학시절 이미 4편의 영화에 출연했을 정도이다. 유명대학 졸업장에 다수의 영화 출연 경험까지 갖춘 딜도라 씨는 그 후 탄탄대로를 달려왔다.
그러데 대학 졸업 후 우연히 현재의 한국인 남편을 만나게 되면서 인생의 항로가 바꼈다. 남편을 보는 순간 첫눈에 반했다는 그녀는 “똑똑하고, 성실한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마음 속으로 그려왔던 이상형이 바로 남편이었다.”며 “사랑에는 국경이 없다는 생각에 결혼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결혼 뒤 한국땅을 밟게 되면서 성공가도를 달려오던 우즈베키스탄에서의 배우 생활도 접을수밖에 없었다. “조금 아쉽긴 했지만 제 결혼에 대해 후회해본 적은 없어요. 한국어가 서툴어 처음에는 다소 외로움을 타기도 했지만, 남편과의 한국생활이 즐거웠고, 지금도 여전히 달콤한 생활을 누리고 있어요.”
한국에 온 뒤 다문화가족지원센터를 통해 수 개월에 걸쳐 한국어를 배워온 그녀는 덕분에 많은 친구도 사귈 수 있었지만, 어린 시절 꿈이었던 배우에 대한 꿈은 여전히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외국인으로서 한국에 적응하기도 바빴던 시절 사실 배우의 꿈은 사치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꿈을 포기할 수 없었다. “무료 한국어교실에서 공부하는 동안 저는 단순히 한국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하기 위한 수준을 넘어 좀더 정확한 어법과 발음을 구사하기 위해 노력했어요. 배우의 꿈을 이루기 위한 일종의 통과의례처럼 말이지요.”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 주인공의 대사를 따라서 반복 연습하기도 했다. 그 결과 그녀의 한국어 실력은 2년 만에 수준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엄청나게 향상됐다. 인터뷰 당시 그녀의 손에 들려있던 책 역시 한국어 교본이었다. 그 책 한 권이 꿈을 향해 포기하지 않는 그녀의 열정과 투지를 오롯이 전달해주고 있었다.
이런 노력 끝에 딜도라 씨는 2010년부터 여러 방송사에서 리포터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 중 한국정책방송 KTV의 ‘사랑합니다 대한민국’이란 프로그램에서는 전국을 돌며 한국의 전통문화를 체험하고 소개하는 안방마님 역할을 하기도 했다. MBC의 ‘우리는 한국인’이라는 프로그램에서는 자신의 이름을 딴 ‘딜도라의 Hello 코리아’라는 코너를 맡아 14개월동안 리포터로 활약했다. 또 다양한 방송사에서 생방송 프로그램을 직접 진행하기도 했다.
모두 배우가 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었다. 그녀는 “배우의 꿈을 갖고 있다고 해서 한국에서 어느 날 갑자기 배우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며 “준비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차근차근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왔다.”고 설명했다. 남편과 시어머니도 그런 그녀를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시어머니가 자주 아이를 돌봐줬기 때문에 활동에 큰 어려움은 없었어요. 촬영을 하다보면 늦어질 때가 많은데 정말 고마운 일이지요. 남편 역시 ‘딜도라 씨,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뭐든지 해봐.’라며 항상 저를 응원해줬어요. 가족이 있었서 늘 든든했지요.”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표정과 말투 속에 시어머니와 남편에 대한 애정이 듬뿍 묻어났다.
지난 3월, 딜도라 씨는 한국에서의 방송활동을 모두 중단한 채 우즈베키스탄으로 향했다. ‘한국에서 온 며느리’라는 제목의 다문화 영화를 촬영하기 위해서였다. 이 영화는 2013년 1월 15일 우즈베키스탄의 영화관에서 개봉할 예정이다.
‘한국에서 온 며누리’는 한국 남자와 결혼한 우즈베키스탄 여성, 그리고 이들의 2세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이다. 딜도라 씨는 영화 속에서 주인공인 큰 딸 역할을 맡았다. 이혼한 부모를 보며 다문화 가정의 어려움을 몸소 느끼고 성장한 딸이 다시금 다문화 가정을 이루며 살아가는 이야기가 주된 내용이다.
딜도라 씨는 “일반적인 다문화 가정에 존재할 수 있는 문제, 문화 차이 등 관중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을 담았다.”며 “최근 다문화 가정이 늘고 있는 가운데 이 영화가 다문화 가정의 현실을 제대로 바라보고, 인식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녀는 “한국에서 열 가정 중 하나는 다문화 가정이라고 하는데 앞으로 다문화를 소재로 한 영화들이 더 많이 등장할 필요가 있다.”며 “한국에 있는 결혼이주여성들에게 어려운 현실 상황에 대한 지혜로운 해법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줄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앞으로 대학에 들어가 좀더 많은 지식을 쌓고, 한국어 실력도 향상시키고 싶다는 야무진 각오도 내비쳤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제 한국어 실력을 인정해주고 있지만, 사실 더 많이 배우고 싶은 욕심이 생겨요. 한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처럼 한국어를 할 수 있는 수준까지 말이지요. 한국 문화에 대해서도 더 많이 알고 싶구요. 기회가 되면 한국 영화에도 출연해보고 싶어요.”
그녀는 자신이 배우의 꿈을 다시 이룰 수 있었던 건 대한민국의 따뜻한 배려 덕분이었다고 말한다. “한국 사회가 다문화 가정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고, 지원을 해주고 있기 때문이지요. 무료로 한국어를 배울 수 있었던 것도, 방송사에서 리포터로 활동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이런 관심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지요. 좋은 영화를 찍어서 한국사회에 꼭 보답하고 싶어요!”
정책기자 리홍리(다문화 공무원) hongli79@empal.com
우즈베키스탄 출신의 딜도라 씨는 2008년 한국 남자와 결혼해 한국에 정착한 외국인 며느리이다. 그리고 다문화 가정 여성으로는 보기 드물게 ‘영화배우’라는 직업을 가진 몇 안 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최근 한국사회가 다문화 가정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면서 결혼이주여성들의 취업률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배우의 꿈을 현실화시킨 그녀의 삶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지난 주말 서울 사당동의 한 커피숍에서 만난 그녀는 영화 ‘한국에서 온 며느리’의 촬영을 막 끝내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뚜렷한 이목구비에 다부진 몸매, 명랑한 말투가 한눈에 봐도 예사롭지 않은 인물이라는 점을 느끼게 한다.
![]() |
영화배우 딜도라 씨는 2008년 한국 남자와 결혼해서 한국에 정착한 외국인 며느리다.(사진=딜도라 씨) |
딜도라 씨는 지난 2008년 우즈베키스탄의 한 예술대학(Uzbekiston Davlat Sahat Instituti)을 졸업했다. 전공은 연기. 그녀는 사실 우즈베키스탄에서는 꽤 잘 나가는 배우였다. 대학 재학시절 이미 4편의 영화에 출연했을 정도이다. 유명대학 졸업장에 다수의 영화 출연 경험까지 갖춘 딜도라 씨는 그 후 탄탄대로를 달려왔다.
그러데 대학 졸업 후 우연히 현재의 한국인 남편을 만나게 되면서 인생의 항로가 바꼈다. 남편을 보는 순간 첫눈에 반했다는 그녀는 “똑똑하고, 성실한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마음 속으로 그려왔던 이상형이 바로 남편이었다.”며 “사랑에는 국경이 없다는 생각에 결혼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결혼 뒤 한국땅을 밟게 되면서 성공가도를 달려오던 우즈베키스탄에서의 배우 생활도 접을수밖에 없었다. “조금 아쉽긴 했지만 제 결혼에 대해 후회해본 적은 없어요. 한국어가 서툴어 처음에는 다소 외로움을 타기도 했지만, 남편과의 한국생활이 즐거웠고, 지금도 여전히 달콤한 생활을 누리고 있어요.”
![]() |
딜도라 씨는 우즈베키스탄에서는 꽤 알아주는 성공한 여배우이다. 연기를 전공한 그녀는 대학 시절 이미 4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사진=딜도라 씨가 주인공으로 출연한 영화의 한 장면 캡처) |
한국에 온 뒤 다문화가족지원센터를 통해 수 개월에 걸쳐 한국어를 배워온 그녀는 덕분에 많은 친구도 사귈 수 있었지만, 어린 시절 꿈이었던 배우에 대한 꿈은 여전히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외국인으로서 한국에 적응하기도 바빴던 시절 사실 배우의 꿈은 사치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꿈을 포기할 수 없었다. “무료 한국어교실에서 공부하는 동안 저는 단순히 한국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하기 위한 수준을 넘어 좀더 정확한 어법과 발음을 구사하기 위해 노력했어요. 배우의 꿈을 이루기 위한 일종의 통과의례처럼 말이지요.”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 주인공의 대사를 따라서 반복 연습하기도 했다. 그 결과 그녀의 한국어 실력은 2년 만에 수준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엄청나게 향상됐다. 인터뷰 당시 그녀의 손에 들려있던 책 역시 한국어 교본이었다. 그 책 한 권이 꿈을 향해 포기하지 않는 그녀의 열정과 투지를 오롯이 전달해주고 있었다.
![]() |
한 지상파 방송사에서 리포터로 활약하고 있는 딜도라 씨. 프로그램의 이름도 그녀의 이름을 따 ‘딜도라 씨의 Hello 코리아’라고 정했다. (사진=딜도라 씨) |
이런 노력 끝에 딜도라 씨는 2010년부터 여러 방송사에서 리포터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 중 한국정책방송 KTV의 ‘사랑합니다 대한민국’이란 프로그램에서는 전국을 돌며 한국의 전통문화를 체험하고 소개하는 안방마님 역할을 하기도 했다. MBC의 ‘우리는 한국인’이라는 프로그램에서는 자신의 이름을 딴 ‘딜도라의 Hello 코리아’라는 코너를 맡아 14개월동안 리포터로 활약했다. 또 다양한 방송사에서 생방송 프로그램을 직접 진행하기도 했다.
모두 배우가 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었다. 그녀는 “배우의 꿈을 갖고 있다고 해서 한국에서 어느 날 갑자기 배우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며 “준비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차근차근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왔다.”고 설명했다. 남편과 시어머니도 그런 그녀를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시어머니가 자주 아이를 돌봐줬기 때문에 활동에 큰 어려움은 없었어요. 촬영을 하다보면 늦어질 때가 많은데 정말 고마운 일이지요. 남편 역시 ‘딜도라 씨,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뭐든지 해봐.’라며 항상 저를 응원해줬어요. 가족이 있었서 늘 든든했지요.”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표정과 말투 속에 시어머니와 남편에 대한 애정이 듬뿍 묻어났다.
![]() |
OBS 생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한 딜도라 씨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지난 3월, 딜도라 씨는 한국에서의 방송활동을 모두 중단한 채 우즈베키스탄으로 향했다. ‘한국에서 온 며느리’라는 제목의 다문화 영화를 촬영하기 위해서였다. 이 영화는 2013년 1월 15일 우즈베키스탄의 영화관에서 개봉할 예정이다.
‘한국에서 온 며누리’는 한국 남자와 결혼한 우즈베키스탄 여성, 그리고 이들의 2세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이다. 딜도라 씨는 영화 속에서 주인공인 큰 딸 역할을 맡았다. 이혼한 부모를 보며 다문화 가정의 어려움을 몸소 느끼고 성장한 딸이 다시금 다문화 가정을 이루며 살아가는 이야기가 주된 내용이다.
딜도라 씨는 “일반적인 다문화 가정에 존재할 수 있는 문제, 문화 차이 등 관중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을 담았다.”며 “최근 다문화 가정이 늘고 있는 가운데 이 영화가 다문화 가정의 현실을 제대로 바라보고, 인식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
![]() |
우즈베키스탄에서 개봉을 앞두고 있는 영화 ‘한국에서 온 며느리’의 주인공 역할을 맡은 딜도라 씨. (사진=딜도라 씨) |
그녀는 “한국에서 열 가정 중 하나는 다문화 가정이라고 하는데 앞으로 다문화를 소재로 한 영화들이 더 많이 등장할 필요가 있다.”며 “한국에 있는 결혼이주여성들에게 어려운 현실 상황에 대한 지혜로운 해법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줄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앞으로 대학에 들어가 좀더 많은 지식을 쌓고, 한국어 실력도 향상시키고 싶다는 야무진 각오도 내비쳤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제 한국어 실력을 인정해주고 있지만, 사실 더 많이 배우고 싶은 욕심이 생겨요. 한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처럼 한국어를 할 수 있는 수준까지 말이지요. 한국 문화에 대해서도 더 많이 알고 싶구요. 기회가 되면 한국 영화에도 출연해보고 싶어요.”
그녀는 자신이 배우의 꿈을 다시 이룰 수 있었던 건 대한민국의 따뜻한 배려 덕분이었다고 말한다. “한국 사회가 다문화 가정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고, 지원을 해주고 있기 때문이지요. 무료로 한국어를 배울 수 있었던 것도, 방송사에서 리포터로 활동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이런 관심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지요. 좋은 영화를 찍어서 한국사회에 꼭 보답하고 싶어요!”
정책기자 리홍리(다문화 공무원) hongli79@empal.com
'교육감(교육 대통령)선거 > 문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젠하임 제단화 (0) | 2013.01.20 |
---|---|
고갱의 '신의 아기' (0) | 2013.01.20 |
半人半獸의 라마수 (0) | 2013.01.20 |
휴고 판 데르 후스의 '성탄' (0) | 2013.01.20 |
르네상스 화가 조토의 혁신 (0) | 2013.01.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