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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감(교육 대통령)선거/스토리 텔링식 산수

어려운 수학공식 이젠 ‘스토리’로 배운다

어려운 수학공식 이젠 ‘스토리’로 배운다
- 2013학년도 첫 학기부터 ‘스토리텔링 수학’ 교과서 도입

[전국] “국어, 영어, 음악, 미술 같은 다른 과목은 다 흥미를 가지고 있는데 유독 수학만 싫어하네요. 수학 못 하면 대학도 못 간다던데 수학문제집만 풀라고 하면 아이가 너무 싫어하니...”
“수학은 재미가 없대요. 다른 과목은 학원을 보내도 잘 다니던데 우리 아이는 수학 학원만 보내면 한달을 못버니네요. 이러다 ‘수포자’ 되면 어쩌죠?”

초등학생 학부모 두 명만 모여도 자연스럽게 대화는 자녀 교육 문제로 옮겨간다. 그 중 수학은 대부분의 학부모들이 아이 교육에 가장 애를 먹는 부분이다. ‘수학을 포기하는 자’라는 의미의 ‘수포자’라는 말도 학부모와 학생들 사이에서는 공공연하게 쓰이고 있을 정도이다. 그만큼 국어나 영어를 포기했다는 이야기는 듣기 힘들어도 수학을 포기했다는 사례는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최근 발표된 국제비교연구(2011년 50개국 초등학교 4학년 대상)에 따르면, 우리나라 학생들의 수학 학업 성취도는 세계 최상위(전 세계 2위)권이지만, 수학에 대한 흥미(50위)와 자신감(49위)은 최하위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교육과학기술부에서 발행한 초등학교 수학익힘책의 일부.
교육과학기술부가 발행한 초등학교 수학익힘책의 일부. 계산하는 방식만 훈련하도록 나열돼 있다.

전문가들은 주입식 교육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실제로 초등학교 교과서인 수학익힘책을 들여다보면, 공식을 나열한 뒤, 이를 대입해 계산하는 방식만 훈련받도록 구성돼 있다. 그렇다보니 수학 공부는 곧 공식 암기라는 등식으로 연결되면서 자연스럽게 수학에 흥미를 잃게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가 새학기부터 도입하기로 한 것이 바로 ‘스토리텔링 교과서’이다. 교육과학기술부 수학과학교육팀 정용호 연구관은 “기존 수학 교과서는 수학적 정의(공식)를 기술하고 관련 문제를 제시하는 것으로 구성돼 있어 학생들이 학습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수학을 공식암기와 문제풀이 과목으로 인식하는 요인이 됐다.”며 “이같은 주입식 교육에서 탈피하기 위해 실생활 소재와 연결된 스토리텔링 방식을 도입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2009년 개정 교육과정에 따라 새롭게 바뀌는 초등학교 수학 교과서의 가장 큰 특징은 ‘스토리텔링’ 방식의 도입이다. ‘스토리텔링’은 교수학습방법 중 하나로, 학습 내용과 관련 있는 소재, 이야기 등 상황(스토리)과 연계하여 수학적 개념을 익히는 것이다.

교과부가 제시한 스토리텔링 교과서 샘플에서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자연스럽게 수학적 질문이 이어지고 있었다.
교과부가 제시한 스토리텔링 교과서 샘플. 이야기를 바탕으로 자연스럽게 수학적 질문이 이어지고 있다. 수식을 사용한 단답형 문제가 아닌 상황을 설명하며 자연스럽게 수학을 공부할 수 있다. (자료=교육과학기술부)

이번 교과서 개정은 올해 신학기 부터는 초등학교 1, 2학년과 중학교 1학년 과정부터 개정이 시작돼, 2014년에는 초등학교 3, 4학년으로 확대되고, 2015년에는 초등학교 5, 6학년으로 단계적으로 개정될 예정이다.

스토리텔링 교과서 도입 소식에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환영의 의사를 나타냈다. 중학생과 고등학교 자녀를 둔 전경숙 씨는 “초등학교 수학 교과서에는 만화나 이야기가 일정 부분 들어가 있어 학부모인 내가 읽어봐도 볼거리가 있었는데, 중학교 교과서를 보니 삭막할 정도로 수학공식으로만 채워져 있어 내가 봐도 지루한 감이 없지 않았다.”며 “스토리텔링을 통해 실생활에 적용할만한 소재들이 많이 나오면 아이들이 수학에 더 흥미를 느끼게 될 것 같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교육과학기술부에서 제공한 스토리텔링교과서 일부분의 모습
스토리텔링 교과서의 일부. 삽화와 스토리를 활용해 재미있게 수학을 배울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자료=교육과학기술부)

초등학교 4학년 자녀를 둔 서희원 씨는 “현재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이야기 마당’이라는 코너가 있어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재미있는 수학 이야기들을 배울 수 있는 부분이 있는데, 아이가 이 부분에 흥미를 느끼고 가끔은 제게 설명도 해준다.”며 “스토리텔링 교과서가 도입되면 그런 부분이 확대돼 아이들의 관심도가 더 높아질 것 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5학년 자녀를 둔 박미리 씨는 “아이가 수학공부 할 때마다 이렇게 어려운 수학을 열심히 공부해서 어디다 쓰냐며 볼멘소리를 자주 하는데, 그 때마다 그냥 열심히 공부나 하라며 잔소리를 한 기억이 있다.”며 “스토리텔링 교과서로 공부하면 수학 공식들이 실생활에 어떻게 쓰이는지 배울 수 있으니 학부모인 제가 더 관심이 간다.”고 말했다.

현재 교육과학기술부가 발행한 수학교과서를 찾아보면
현재 교육과학기술부가 발행하는 수학교과서에도 ‘이야기 마당’이라는 코너를 통해 스토리텔링 수학을 접할 수 있도록 해놨다. 그러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반면, 새롭게 바뀌는 교과서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 일부 학부모들은 혼란스럽다는 반응도 보였다. 익명을 요구한 한 학부모는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개정이 되면 저학년때 차근차근 준비를 시킬 수 있지만 당장 신입생부터 적용된다고 하니 조금 혼란스럽다.”며 “교과서가 바뀌어도 학교에서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시험을 치르고 성적을 낸다면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 지 의문이 든다.”며 우려를 표했다.

수학학원을 운영하고 있다는 안 모 원장은 “최근에야 정보가 많이 나왔지만 그 전까진 이름만 스토리텔링 수학이라고 알려졌을 뿐 그 내용과 관련된 정보를 얻기 어려워 학부모들의 상담전화가 빗발쳤다.”며 “현재 사설 출판사에서 출판된 스토리텔링 수학 문제집을 활용해 선행학습만 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지금과 같은 입시 제도 속에서 교과서만 개편된다고 상황이 달라질 지는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미국의 SAT(한국의 대학수학능력시험과 유사한 시험)시험에서는 수학 관련 공식을 시험지에 제시해주고 계산기의 사용도 허용한다. 즉, 학생들은 사고력 문제를 해결하는 위주의 문제를 풀고 있는 것이었다.
미국의 대학입학 시험인 SAT(한국의 대학수학능력시험과 유사한 시험)시험에서는 수학 관련 공식을 제시해주고, 계산기 사용도 허용한다.

자녀를 해외 대학에 진학시킨 경험이 있다는 한 학부모는 “미국의 경우 수능시험(SAT)을 칠 때 계산기도 반입되고, 관련 공식들도 다 나열돼 있어 사고력을 평가하는 식으로 시험이 진행되고 있는 반면, 한국의 경우 공식 하나만 외우지 못해도 한 문제를 그냥 날려야 하는 상황”이라며 우리 교육의 현실을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학부모는 “스토리텔링 교과서로 바뀌더라도 기계적으로 잘 푸는 학생들이 고득점을 받는 시스템을 개선하지 않으면 큰 효과는 없을 것 같다.”며 “교과서가 바뀌는 만큼 새로운 수학 평가방식을 도입해 아이들이 흥미를 잃지 않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교육과학기술부는 학부모들과 학생들의 이런 우려를 덜어주기 위해 전국을 순회하며 학부모 설명회와 현장 교사 연수를 실시한다는 계획이다. 당장 1월 14일부터 17개 시·도 교육청을 순회하며 초등학교 1~2학년 담당 교사들을 중심으로 수학 교과용도서 교사연수를 실시한다.

정책기자 최주현(대학생) juhyeonchoi@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