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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훈민정음 해례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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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 ‘갑갑한 운명’

한겨레|입력2013.01.17 21:50

[한겨레]한글 창제원리 풀이한 해설서


기증의사 밝힌 소유권자 사망


훔친혐의 기소된 현재 소유자


무죄 받은뒤 기증약속 안지켜

"피고인은 앞으로 50년 더 살기가 어렵다.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이 당신의 운명과 함께해서는 안 된다. 해례본을 공개하고 전문가들에게 맡겨 후손들을 위해 잘 보존될 수 있도록 해달라."

지난해 9월7일 대구고법 형사1부(재판장 이진만)는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을 훔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은 배아무개(50)씨에게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하며 이렇게 당부했다.

배씨는 이 재판장의 부탁에 "책임지고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다. 앞서 한달 전 있었던 공판에서도 배씨는 "나의 억울함이 밝혀지면 해례본을 기증할 의사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넉달이 흘렀지만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은 여전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특히 지난달 26일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의 법적 소유권자였던 조용훈(68)씨마저 사망해,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이 당분간 세상에 나올 가능성은 더욱 희박해졌다. 조씨는 지난해 5월7일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이 돌아온다면 국가에 기증하겠다"며 문화재청에 기증서를 전달한 바 있다.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은 2008년 7월 배씨가 경북 상주시 낙동면의 집을 수리하다 발견했다며 외부에 공개했다. 하지만 곧 상주에서 골동품가게를 운영하던 조씨가 "배씨가 상주본을 내 가게에서 훔쳐갔다"고 주장하고 나서 양쪽의 공방이 시작됐다. 불교 조계종도 경북 안동 광흥사에서 도난당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나서 사태는 더욱 복잡해졌다.

결국 대법원은 2011년 5월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 소유권자는 조씨라고 확정 판결했지만, 배씨는 지난해 9월 무죄로 풀려난 뒤에도 조씨에게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을 돌려주지 않았다. 오히려 배씨는 재판 과정에서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했던 증인들을 위증 및 교사 등 혐의로 고발했다. 배씨는 현재 외부와 연락을 끊은 상태이다.

상주의 한 주민은 "배씨는 상주시 낙동면 구잠리 집에서 어머니, 형과 함께 조용히 살고 있으며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에 대해서는 일절 말하지 않는다. 적어도 10년은 지나야 꺼내놓을 것이라는 소문이 무성하다"고 전했다.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은 한글 창제 원리를 풀이한 한문으로 된 해설서다. 훈민정음 창제 3년 뒤인 1446년(세종 28년) 편찬됐다. 서울 간송미술관에 있는 <훈민정음 해례본> 간송본(국보 70호)과 동일한 판본이다. 하지만 상주본은 간송본보다 보존 상태가 좋고 학자의 어문학적 견해가 많아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김일우 기자cooly@hani.co.kr